[S리포트-외화내빈 한국특허] 심사관 1명이 年 217건 'EU의 4배'...부실 심사가 부실 특허 양산

■높은 특허무효율 왜
담당 분야도 87개로 美의 10배
건당 심사시간은 11시간으로
유럽 34시간보다 턱없이 부족
권리 강한 특허가 국가경쟁력
인력·전문성 보강 중요한데
정부선 심사관 증원에 미온적


특허청은 25일 지난해 특허 등록 대비 무효심판 청구율이 0.44%, 무효심판 인용 비율은 0.28%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수치는 매년 국정감사에서 특허무효심판 인용률이 높다는 의원들의 지적이 제기되자 전체 특허등록 건수에 비해 미미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지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수만, 수십만건의 특허가 등록돼도 의미 있는 특허는 시장에서 통하는 ‘시장성 있는 특허’다. 특허무효심판이란 바로 이런 ‘시장성 있는 특허’에 집중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결국 특허무효심판 인용률이 높다는 것은 특허등록 심사가 ‘부실하다’는 결과이며 우리의 특허 정책이 출원 확대에만 신경 쓰면서 특허권 보호에 취약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지적재산(IP) 관련 국제적 분쟁이 증대하고 있고 특허 권리의 불안전성이 기업 경영에 주요 애로로 부상하면서 특허의 신뢰도가 더욱 중요해지는 추세를 감안하면 우리의 특허 신뢰도 회복이 시급하다.

◇인력·전문성 부족이 높은 특허무효율로 나타나=특허무효심판이 인용되면 기존 특허가 백지화하는 꼴이다. 특허권자 입장에서는 다른 기업이 자신의 특허와 관련한 유사 상품을 내놓더라도 특허침해 소송이나 이와 관련한 손해배상 소송의 근거가 무력화되는 것이다. 결국 무효인용이 높다는 것은 특허출원 과정에서 심사가 부실했다는 결과로 봐야 한다. 특허심사관 한 사람당 1년에 처리하는 물량이 200건이 넘는 상황에서 특허심사 품질을 유지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허심사관 1인당 특허 처리 건수는 지난 2016년 기준 한국이 217건으로 유럽(58건), 중국(68건), 미국(77건), 일본(171건)보다 절대적으로 많다. 그러다 보니 특허 1건당 심사관들이 평균적으로 투여하는 시간도 11시간으로 유럽 34.5시간, 중국 29.4시간, 미국 26시간, 일본 17.4시간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다.

특허청은 특허심사관 인력 확충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나 심사관은 박사급 이상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고 정부 직제에서도 6급 이상의 고위 공무원이기 때문에 행정안전부 등에서도 미온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여기에다 심사관 1인당 담당하는 기술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점도 지적한다. 미국의 심사관이 평균 9개 분야를 심사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그 10배에 달하는 87개 기술 분야를 다룬다. 한국 특허심사관이 박사급 이상의 높은 수준을 자랑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분야를 다뤄야 하는 점은 심사 전문성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리가 강한 특허가 경쟁력이다=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보유한 특허는 9만1,526건(US특허 기준)이다. 반면 애플은 1만5,227건에 불과하고 중국의 화웨이 역시 삼성의 절반 수준이다. 그럼에도 삼성을 대상으로 한 애플과 화웨이의 특허침해 소송은 수십 건이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물량 중심의 특허 정책으로는 글로벌 지적재산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허법은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해당국마다 출원, 등록, 등록 유지 등의 제도가 다르고 무효심판과 특허침해 소송 등 권리 다툼에 관한 제도도 다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처럼 무효인용률이 높은 것은 문제가 있다. 미국의 경우 ‘USPTO 2014~2016’ 전략을 통해 심사기간을 단축하고 심사역량 강화를 위한 중장기 전략목표를 세워놓고 추진 중이다. 심사인력 대폭 확충 등 우리가 비슷한 경로로 가고 있는 일본의 경우도 ‘지적재산 추진계획’을 ‘강하고 광범위하고 쓸모 있는 특허권’을 모토로 2015년부터 8대 주요 시책으로 추진 중이다. 결국 주요국들은 특허제도를 국가경쟁력의 핵심으로 보고 특허 관련 인력 확충 등 인프라 구축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심사관 증원 계획, 제대로 되고 있나=특허청은 지난해 말 ‘4차 산업혁명시대의 지식재산 정책방향’을 발표했다. 등록된 특허가 무효화 되면 특허권자는 등록료 전액을 돌려받고 악의적인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대해서는 손해 금액의 3배 내에서 배상하는 ‘징벌적 배상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특허 품질 혁신을 위해 현재 800명대 후반인 심사인력을 오는 2022년까지 1,000명 수준으로 증원해 특허심사 1인당 투입시간을 현재 11시간에서 20시간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여기에다 일본 등에서 효과를 본 ‘무효심결예고제’ 등을 시행해 2022년까지 무효심판 인용률을 33%로 낮춘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 중 올해 업무보고에는 장기 계획인 제도 개혁은 제외하고 인력 확대 방안만 들어갔다.

특허청은 이를 위해 4차 산업혁명 관련 특허기술을 심사하는 전담조직 신설과 대규모 심사관 증원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핵심 기술에 대한 특허심사를 전담할 ‘4차 산업혁명 기술심사국(가칭)’을 설치하기 위해 행안부와 협의하고 있다. 이 심사국은 인공지능심사과·사물인터넷심사과·빅데이터심사과 등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8대 기술을 심사하는 8개 과로 구성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국은 200여명 안팎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증원에 대한 행안부의 호응이 관건이라고 보고 있다. /온종훈 선임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