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의 무역전쟁으로 직격타를 맞은 농가들에 대해 최대 120억달러 규모의 긴급지원에 나선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지지기반이자 중국 보복관세의 타깃이 된 ‘팜벨트(농업지역)’의 피해를 보전해 무역전쟁 장기화에 대비하는 동시에 ‘표밭’을 관리하겠다는 심산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정부의 이번 조치로 무역전쟁이 더욱 격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미 농무부는 24일(현지시간) 무역분쟁으로 피해를 본 농가들에 대한 지원자금을 120억달러까지 확대한다고 밝혔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 언론이 보도했다. 지원 대상은 콩·옥수수·과일·면화·돼지고기 등 중국의 보복관세로 타격을 받은 모든 농축산물로 농무부는 피해농가들에 직접 자금을 지원하거나 팔지 못한 농산물을 매입할 계획이다.
농가 지원은 농무부 산하 상품금융공사(CCC)를 통해 이뤄져 별도의 의회 승인을 거치지 않고 즉각 시행된다. CCC는 지난 1933년 대공황 극복을 위한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설립됐으며 농산물 가격 폭락 시 미 농가에 대출이나 직접 자금지원 등을 할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가졌다.
소니 퍼듀 미 농무장관은 “불법적 보복관세로 피해를 본 농가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자 미국의 굴복을 얻어내기 위해 우리 농가를 협박할 수 없다는 확고한 표현”이라며 “정부에 장기적인 무역협상을 위한 시간을 벌어주려는 단기대응책”이라고 설명했다.
퍼듀 장관의 발언은 트럼프 정부가 무역전쟁을 확대하기 위해 내부 전열을 가다듬었다는 관측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6일 34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160억달러 규모의 추가 관세 부과를 위해 이날부터 이틀간 공청회를 열고 있다. 중국 역시 미국의 추가 관세 결정에 즉각 똑같은 규모의 보복관세로 맞대응할 것임을 예고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도 25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지속할 것이라는 의지를 다시 한 번 드러냈다. 그는 트위터에 “중국이 미국을 이용하는 것을 내가 계속 용인하도록 우리 농부들을 공격하고 있다. 중국은 악랄하게 굴고 있지만 실패할 것이다. 우리는 친절하게 굴었다. 지금까지는!”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약해빠진 의원들이 무역협상을 중단하거나 불공정한 관세에 대한 맞대응으로 관세를 사용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볼 때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며 의원들을 비판한 뒤 “협상들이 매우 잘되고 있다. 최종 결과는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농가지원책은 이번주 아이오와·일리노이 등 4개의 팜벨트 주를 방문해 11월 선거에 출마하는 공화당 후보들에 대한 지지 유세에 나서기 직전에 나온 것으로 선거 승리를 노린 ‘농가 달래기’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과 특검 수사에 발목이 잡혀 있지만 2·4분기 4%대 후반으로 전망되는 깜짝 성장률과 무역전쟁을 앞세워 중간선거 승리를 도모하고 있다.
다만 고율 관세 부과로 초래된 원자재 가격 상승의 피해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무역전쟁이 공화당의 지지율을 올려줄지는 의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랜드 폴 공화당 상원의원은 “관세는 미 소비자와 생산자를 벌하는 세금”이라며 “해답은 농민들을 위한 복지가 아니라 관세를 없애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AFP통신은 농가지원책에 대해 “공격적 무역정책이 미국민에게 타격을 가하고 있다는 점을 트럼프 정부가 처음 인정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