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오른쪽)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실험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연구재단
복잡한 반도체 설계와 제작 공정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민감한 고해상도 카메라와 빛으로 계산이 가능한 신개념 컴퓨터를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극미세나노선광소자 창의연구단장인 박홍규(42)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는 실리콘 나노선에 다공성실리콘(PSi)을 부분적으로 삽입해 빛으로 전기 신호를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새로운 나노 트랜지스터를 개발했다. 이는 전기로 전기 신호를 제어하는 게 아니라 빛으로 전기 신호를 제어하는 최초의 성과로 평가된다. 그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서울경제신문이 공동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7월 수상자로 결정된 배경이다.
전기 신호의 증폭 작용과 스위치 역할을 하는 트랜지스터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구성하는 핵심 부품이다. 그동안 트랜지스터의 동작 효율을 높이기 위해 나노(㎚·10억분의1) 크기로 제작하거나 실리콘이 아닌 매우 얇은 두께의 신물질을 사용하거나 빛을 쪼여주는 연구가 진행돼왔다. 하지만 복잡한 공정과 낮은 수율로 인해 상용화에 애로가 컸다.
다공성실리콘(PSi)을 단결정실리콘(CSi) 나노선에 부분적으로 삽입한 모습을 전자현미경으로 담은 장면. 합성된 실리콘 나노선의 양 끝단에 전압을 걸면 PSi가 주입된 전하를 내부에 구속시켜 전류가 거의 흐르지 않게 된다. 빛을 쪼여줘 매우 큰 전류 증폭을 기대할 수 있다. /사진제공=박홍규 교수
박 교수는 수㎚의 초미세 구멍이 수없이 많은 PSi 주위로 단결정실리콘(CSi·규소 원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반도체 핵심소재)이 연결된 나노선 구조에 빛을 쪼여 전류를 매우 크게 증폭하는 나노선 트랜지스터를 개발했다. 나노선은 단면 지름이 수㎚∼수백㎚, 길이는 수십㎛(100만분의1)인 1차원 나노 구조체로 레이저나 트랜지스터·메모리 등에 쓰인다.
전기신호가 아닌 빛으로 트랜지스터의 전기 특성을 제어하면 기존 복잡한 반도체 공정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소자의 크기를 더욱 작게 제작하고 비용적·기술적 노력도 줄일 수 있다. 고성능 논리 회로, 민감한 광검출기 등의 응용 소자를 손쉽게 구현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나노선 트랜지스터는 크기가 작고 약한 빛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고해상도 카메라 개발이 가능하다. 빛으로만 전기 신호를 제어할 수 있어 계산 속도가 획기적으로 빠른 컴퓨터 개발도 가능한 셈이다.
박 교수는 “PSi를 원하는 곳에 배치하고 필요한 위치에 빛을 쪼여줘 하나의 나노선으로도 모든 전자 기기를 간단히 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며 “나노선을 원하는 대로 정렬하고 배열하면 다기능의 나노 소자, 나노 광소자를 상용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개의 다공성실리콘(PSi)에 각각의 레이저를 조사해 구현한 나노 논리 회로와 논리 회로가 형성된 값. 하나의 실리콘 나노선에 두 개의 PSi를 갖는 트랜지스터를 제작해 새로운 논리 회로를 구현할 수 있다. 논리 회로는 컴퓨터의 기초가 되는 소자라 빛으로 빠르게 계산이 가능한 컴퓨터 개발이 가능하다. /사진제공=박홍규 교수
이처럼 나노과학과 나노기술이 발전하면 레이저, 발광다이오드(LED), 광검출기 등 광소자의 크기를 줄이며 동작 효율은 획기적으로 높아지게 된다.
박 교수는 “나노 구조체는 전자나 빛의 흐름이 일반 구조와 많이 다르다”며 “구조의 작은 변화로도 전자를 아주 잘 흐르게 하거나 아예 못 흐르게 할 수 있고 원하는 색깔의 빛만 가두거나 반사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20~30년 전만 해도 이론적으로만 생각하던 물리현상이나 불가능하던 실험을 나노 구조체에서 쉽게 구현하게 된 것이다. 에너지나 의학 분야에서 나노 구조체를 많이 연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머리카락 두께보다 작은 나노 레이저를 눈에 넣으면 정상 망막 세포는 손상시키지 않고 비정상 세포만을 골라서 없애는 식이다. 나노 광검출기는 눈에서 높은 해상도를 갖는 인공 망막으로 동작할 수 있다. 나노 레이저를 뇌에 붙여 특정 뉴런을 자극하면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조차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박 교수는 국제 나노 구조체 연구 중 미국 하버드대의 찰스 리버 교수 연구실에 주목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그물 모양의 나노 탐침을 살아 있는 쥐의 뇌에 넣어 1년 가까이 동일한 뉴런 신호를 추적하고 기록해왔다. 기존에는 탐침 주변에 염증 반응이 나타나 뉴런 신호가 장기간 안정적으로 측정하기 힘들었지만 나노 구조를 활용해 해결했다. 박 교수팀은 최근 리버 교수팀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나노 탐침을 눈에 넣어 망막 뉴런의 신호를 측정했다. 노화나 뇌 질환, 뇌의 발달 과정 등 다양한 신경 프로세스를 연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어서다. 박 교수는 “나노 광소자를 의학과 에너지 분야 등에 적용하면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