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인터뷰①] '기름진 멜로' 김사권 "나는 아직도 악역에 목마르다"

KBS2 ‘황금빛 내 인생’과 tvN ‘부암동 복수자들’ 속 배우 김사권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놀라운 활약이 아닐 수 없다. 따뜻하고 다정하고 인정이 넘치던 그가 누구보다 악랄하고 비겁하고 얄미운 역할을 이렇게 잘 해낼 줄이야….

지난 17일 종영한 SBS ‘기름진 멜로’에서 김사권은 재벌 3세이자 호텔 사장인 용승룡으로 출연했다. 서풍(이준호 분)의 애인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그를 주방에서까지 내쫓은 악역 중의 악역. 자신의 권력과 야망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두칠성(장혁 분)과 갈등하던 그는 결국 체포되며 죗값을 받았다.

배우 김사권이 2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서경스타 사옥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조은정기자

Q 마지막 회를 본 소감이 궁금하다. 모두에게 해피엔딩이었지만 본인에게는 새드엔딩이었다.

연기 생활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호송 버스를 타봤고 송치복도 입어봤다. 연기임에도 기분이 묘하더라. 종방연에서 다 같이 마지막 회를 보는데 씁쓸했다. 옆에서 두칠성(장혁 분) 패거리는 박수치고 웃길래 “좋아? 아직 형 확정 안 됐다”고 얘기했다. 그리고는 인스타그램에 ‘죄짓고 살지 말자’고 올렸다. 내 역할을 보면서 씁쓸하기는 했지만 세상은 저렇게 되는 게 맞다는 생각을 했다.

Q 배우 인생 첫 악역이다. 이전까지 선한 역 위주로 연기했는데 어떻게 캐스팅이 됐나.

‘황금빛 내 인생’ 종방연 자리에서 고기를 굽다가 ‘기름진 멜로’ 첫 미팅에 갔는데 감독님이 “분명히 날카로움이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무표정이나 선한 표정 속에 있는 악함을 보고 싶으셨다는 거다. 그래도 선한 이미지가 강하니 다른 역할을 주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감독님께서 둘 중에 뭐가 마음에 드냐고 물으셨는데, 저는 이미 용승룡 역할에 마음이 가 있었다. 사실 욕심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편인데 그날은 얘기해야만 할 것 같아서 말씀드렸다. 며칠 후 확정 소식을 들었다. 감독님께서 어디 가서 표출한 적이 없는 제 안의 무언가를 봐주셨다는 게 감사하다.

Q 처음으로 악역을 하면서 부담은 없었나.

악역을 하고 싶은 마음은 계속 가지고 있었지만, 그동안 선하고 반듯한 이미지를 주로 하다보니 시청자들이 어색함을 느끼시지는 않을까 부담이 있었다. 살을 많이 빼고 헤어스타일이나 톤을 바꿨더니 다행히 좋게 봐주셨다.

Q 악역 연기를 해보니 어떤가. 주변 반응이 달라진 게 체감이 되나.

악역이 이렇게 욕을 먹는 구나 알게 됐다. SBS 공식 홈페이지 역할 소개에 들어가 보니 저한테 댓글이 16개가 달렸더라. ‘죽어라’부터 ‘당장 감옥에 가야 한다’ ‘헤드샷’ 등 장난 아니었다. 오히려 려원, 준호 등 좋은 캐릭터에게는 별 말이 안 달렸다. ‘기름진 멜로’ 전까지는 어딜 가든 호감이라고 하시면서 좋게 얘기해주셨다. 1, 2회가 방송된 이후부터는 ‘사장자식’이라는 이야기가 들리더라. 야외촬영하고 있으면 ‘중국집 사장이다. 진짜 못됐다’고 하셨다. 특히 어른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예전엔 ‘너무 고생 많지’ 하시다가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고 하시더라.


Q 악역을 연기하면서 가장 신경 쓴 것이 있다면.

작가님이나 감독님이 기존에 있는 흔하디흔한 재벌 3세와는 다른 악역을 만들자고 강조하셨다. 뻔한 연기는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많이 고민하고 노력했다. 원래 자기가 악한 행동을 하면서 악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진짜 나쁜 거다. 그래서 더 밉게 봐주신 것 같다. 항상 여유 있는 태도로 ‘너네는 너네고 나는 나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려 했다.

배우 김사권이 2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서경스타 사옥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조은정기자

Q 액션 연기도 있었다. 장혁에게는 맞고 이준호는 때리는 장면이 많았는데.

장혁 형과 액션신이 많았다. 역시나 대단한 배우였다. 미리 다 짜고 연습도 해오시더라. 사전에 액션스쿨에서 같이 연습을 하고 현장에서 무술감독님과 변화를 넣었는데 합이 금방 맞았다. 액션에서는 NG가 거의 없었다. 반대로 준호는 제가 때리기만 해서 NG가 나거나 합이 안 맞을 게 없었다. 그때는 제가 ‘싸움 신’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해도 장혁 선배는 때릴 수가 없더라. 차 안에서 찍을 때 살짝 다친 거 말고는 부상도 없이 잘 마무리했다.

Q 장혁, 이준호와의 호흡은 어땠나.

서풍(이준호)은 내 말을 안 듣는 애가 처음이라 그냥 죽도록 미워하고 무시했다가 나중에는 얘가 필요함을 느끼고 어떻게 구워삶아야 할지 고민하게 됐다. 감정이 더 깊어진 게 느껴지더라. 혁이 형하고는 웃긴 게 많았다. 두칠성이 은근히 코믹 캐릭터였다. 중요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갈 때 본인만의 손동작을 하니까 너무 웃겼다. 그걸 보고 ‘뭐지?’라는 생각에 살짝 찡그렸는데 방송에 그대로 나갔다. 감독님도 그 감정이 좋으셨던 거다. 서풍과 진지한 감정이라면 두칠성과는 코믹이 많았던 것 같다.

Q 연기적으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없나.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고개 숙이고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렸다. 용승룡은 당당하고 죄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인물이니까. 근데 하필 그날이 최고 기온에 햇빛도 엄청 드는 날이었다. 눈이 부셔서 표정을 살짝 찡그리다보니 아련해 보였나보다. 용승룡이 회개를 한 건 절대 아니었다. 저는 당당하게 들어가고 싶었다.

Q 첫 악역 연기에 대해 스스로 만족도를 평가해보자면.

참 멀었는데, 50% 정도라고 하고 싶다. 시작이 반인데 시작을 했지 않나. 앞으로 50을 더 채워나가야 될 것 같다. 중, 후반부로 가면서 드라마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다보니 단편적인 악행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조금 더 이유 있는 악행을 저질렀다면 어땠을까 싶기는 하다. 차라리 더 악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거다. 나는 나쁜 놈이고 싶다(웃음). 그래서 다음에도 또 악역을 해보고 싶다. ‘악역에 목마르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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