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바꾼 일상] 짧은거리도 택시…밤엔 호텔서 '에어컨 피서'

이달 택시콜 전년보다 20%나 쑥
"호텔서 에어컨 마음껏 틀어요"
숙박업소 예약건수도 35% 늘어
밤잠 설친 직장인은 수면카페로


“저기요, 제가 먼저 타려고 했거든요.”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25일 오후1시. 서울 강남역사거리 옆 인도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택시 한 대를 놓고 서로 먼저 타기 위해 두 시민이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결국 택시기사가 내려 “날도 더운데 행선지가 크게 다르지 않으면 같이 타고 가시죠”라고 중재한 후에야 두 사람은 택시에 올라탔다. 폭염 탓에 ‘카풀’까지 해야 할 만큼 택시가 모자란 것이다.


연일 계속되는 찜통더위로 힘든 나날이 이어지고 있지만 택시·호텔·수면카페·노래방 등 시원한 냉방시설을 갖춘 곳들은 오히려 ‘폭염 특수’를 맞아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25일 서울경제신문이 서울 도심을 취재한 결과 폭염 특수를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있는 곳은 택시 업계다. 이날 낮12시부터 1시까지 서울 종로구 광화문사거리를 살펴보니 40대가 넘는 택시가 지나갔지만 단 한 대도 빈 차가 없었다. 푹푹 찌는 더위에 짧은 거리도 택시를 타는 손님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실제 카카오택시 집계 결과 지난해 7월 대비 올 7월 택시 콜 수는 20%가량 늘었고 최근 2주 사이 콜 수가 집중적으로 증가했다. 택시기사 김모(58)씨는 “최근 일주일 새 10~15분 거리를 이동하는 ‘단타’ 손님이 부쩍 늘었다”며 “손님을 내려주자마자 다른 사람이 뛰어들어와 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숙박 업체들도 폭염을 반기는 분위기다. 퇴근 후 회사 인근 호텔에서 쾌적하게 쉬려는 손님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30대 젊은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편이다. 서울 중구의 한 회사에 다니는 양모(27)씨는 “날씨가 너무 더워 퇴근해서 집에 가기도 힘들고 에어컨을 조절하면서 자기도 불편해 요즘 회사 주변 호텔을 가끔 이용한다”며 “어젯밤에도 회사 근처 호텔에서 에어컨을 마음껏 틀고 편히 쉬었다”고 전했다. 실제 숙박중개서비스 업체 ‘여기어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대비 올 7월 숙소 예약 건수가 35% 늘었다. 특히 부티크호텔 등 비교적 가격은 저렴하면서 시설이 좋아 ‘가성비’ 좋기로 알려진 숙박시설의 예약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2% 증가했다. 여기어때 관계자는 “폭염으로 직장인의 방문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젊은층 사이에서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무더위 속에 작은 사치를 실천하는 1인 가구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열흘 넘게 열대야가 이어지자 밤잠을 설친 직장인들이 늘면서 점심시간에 짬을 내 잠깐 눈을 붙일 수 있는 곳들은 자리가 없어 줄을 서야 할 정도다. 이날 낮12시께 서울 종로구의 한 수면카페는 안마의자가 전부 꽉 차 있어 앉을 자리조차 없었다. 카페 관계자는 “점심시간은 인근 직장인들이 몰려서 꽉 찬다”며 “저녁도 사람이 많기 때문에 예약은 필수”라고 전했다. 증권사 영업사원들의 ‘쉼터’로 유명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 노래방들도 요즘 밀려드는 손님들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여의도의 한 노래방에서 만난 박모(34)씨는 “커피 한잔 값만 내면 점심시간에 노래방에서 잠을 자거나 쉴 수 있어 남자 직원들끼리 자주 온다”면서 “요즘은 잠을 잘 못 잤다며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고 오자는 동료들이 많아 거의 매일 찾고 있다”고 귀띔했다. /신다은·박진용기자 downy@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