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7일(현지시간) 2·4분기 성장률을 4.1%까지 끌어올리며 ‘골디락스(Goldilocks)’ 경기의 면모를 과시했다. 한국은행이 연간 성장률 3%에도 못 미치는 한국 경제의 암울한 현주소를 공개한 지 하루 만이다. 한국에서 온갖 규제에 주눅 든 기업들의 투자가 곤두박질하며 경제성장에 제동이 걸린 사이 세계 최대 경제국인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법인세 인하와 과감한 규제 완화 등 친(親)기업 정책에 힘입어 경제를 무서운 속도로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한 수치로 확인된 순간이다.
한국과 미국의 성장률 곡선이 엇갈린 것이 어느 한 가지 요인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결국 기업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한미 경제의 희비를 갈랐다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위기의식을 느낀 문재인 정부가 최근 들어 투자 협조를 구하기 위해 재계의 숨통을 틔우고 있기는 하지만 ‘갑을’ 구도의 기업 때리기와 규제 완화에 따른 기업의 투자유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노리는 어중간한 태도로는 한국 경제를 성장궤도로 되돌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되는 지지율 부진에도 어깨에 힘을 줄 수 있는 것은 가시적인 경제성과 때문이다. 과거 해외에 현금을 쌓아두기 바빴던 미국 기업들은 집권 초부터 기업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대폭 손질하고 법인세 인하를 밀어붙인 트럼프 정부에 화답하듯 속속 미 본토로 돌아와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미국인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좌충우돌 외교정책과 갈수록 꼬여가는 러시아 연루 스캔들에 한숨을 쉬면서도 그의 경제운용에 대해서만은 고개를 끄덕인다. 하버드대 CAPS-해리스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45%에 그쳤지만 경제정책에 대한 지지율은 55%로 단연 높은 수준이다. 얼마 전 트위터로 “우리나라는 훌륭하게 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최고의 경제수치”라고 목청을 높인 트럼프 대통령의 자신감이 현실화한 만큼 트럼프노믹스에 대한 미국인의 신뢰는 한 단계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성장 속도를 높이는 미국과 달리 한국의 현실은 갑갑하기만 하다. 26일 공개된 2·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0.7%, 연간 기준으로도 2.9%에 그친다. 하반기 경제 여건이 점차 악화되는 점을 감안하면 2.9% 성장도 어려워 보인다. 법인세율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기업들이 투자를 늘릴 엄두도 내지 못하면서 이 기간 설비투자 증가율은 -6.6%로 곤두박질쳤다. 고용사정도 안 좋아져 소비는 ‘제로’에 가까운 수준으로 둔화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경제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기 시작하자 문재인 정부는 뒤늦게나마 재계와의 소통을 늘리고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규제 완화에 나서기 시작했다. 대규모 고용을 창출하는 투자를 할 경우 규제를 패키지로 풀겠다는 정부의 약속에 SK하이닉스는 15조원의 대규모 투자를 진행한다고 한다.
하지만 투자 유도를 위한 규제 완화 움직임이 나오는 한편으로는 정부의 기업 때리기 또한 여전하다. 택배와 이동통신 등 각 업계로 원가를 공개하라는 압박이 확산되는가 하면 ‘오너 갑질’을 빌미로 진에어는 면허취소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기업들의 투자 의욕을 살리기 위해 기업친화적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지난 1년여 동안 산산조각 난 기업의 신뢰를 복원하고 함께 경제를 이끌어 갈 ‘파트너’로서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려면 두 마리 토끼를 쫓지는 말아야 한다. 무너진 경제에 정권의 발목을 잡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확실한 방향전환이 필요할 때다. kls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