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에 대한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27일 1심 결심공판을 마치고 서울 서부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자신의 정무비서에 대한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재판이 27일 일단 마무리됐다. 이날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안 전 지사 사건을 ‘전형적 권력형 성범죄’라고 주장하며 징역 4년과 더불어 성폭력치료강의 수강명령 이수와 신상정보 고지를 구형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피해자인 정무비서 김지은씨와 안 전 지사의 공개 진술이 잇따라 진행돼 관심을 끌었다.
오전 10시 결심공판이 열린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303호 대법정은 사안의 중요성을 반영, 방청객들로 가득 찼다. 먼저 말문을 연 것은 피해자 김지은씨였다. 김씨는 창백한 얼굴에 질끈 묶은 머리로 안경과 검은 옷을 착용하고 변호인과 함께 입정했다. 피해자 진술을 통해 “지난 3월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한 후 통조림 속 음식처럼 갇혀 죽어 있는 기분으로 지냈다”고 입을 연 김씨는 시선 오른쪽에 앉아있는 안 전 지사를 의식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발언을 이어나갔다. 그는 “거짓된 진술과 편향된 보도처럼 유무형으로 몰아치는 피고인의 힘 앞에 두려웠고 모든 것을 ‘미투’ 이전으로 되돌리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면서도 “사건의 본질은 피고인이 힘을 이용해 제 의사와 관계없이 성폭행을 한 것”이라며 피고인에 대해 이성적인 감정을 느낀 적 없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안 전 지사에 대해 “자신의 권력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며 “지위를 이용해 약한 사람의 성을 착취하고 영혼까지 파괴했다”고 일갈했다. 그는 이어 “피고인 안희정에게 꼭 말하고 싶다”며 “당신이 한 행동은 범죄다. 당신은 나에게 한 번도 남자인 적이 없다. 당신의 행동은 법으로 처벌받아야 할 잘못된 행동”이라고 흐느끼며 말을 이었다.
이에 대해 안 전 지사는 김씨의 진술을 듣는 내내 괴롭다는 듯 눈을 감고 방청석으로부터 고개를 돌린 채 이따금 안경을 벗었다가 다시 썼다.
오후에 속개된 공판에서는 안 전 지사의 피고인 최후진술이 있었다. 안 전 지사는 “모든 분에게 미안하다. 고통 겪는 고소인과 고소인을 지원하는 변호사, 여성 인권단체분들에 죄송하다”면서도 자신이 정무비서 김씨에게 위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어떻게 지위를 가지고 한 사람의 인권을 빼앗나”라는 대목에서는 방청석에서 ‘허’하는 탄식이 나오기도 했다.
안 전 지사는 “나 역시 관계를 지속하면서 도지사로서, 가장으로서 고통을 겪었다”며 “고소인에게도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제게 보내주신 사랑과 지지에 실망감을 드려 부끄럽다”면서도 “진실은 진실대로 판단해 달라. 사회·도덕적 책임은 회피하지 않겠다. 범죄에 대해서는 정의로운 판단 내려주시기 바란다”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그는 대체로 차분한 태도로 진술했으나 간혹 북받친 듯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안 전 지사는 지난해 7월29일부터 올해 2월25일까지 충남도지사 정무비서 김씨를 상대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4회, 강제추행 5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회를 저지른 혐의로 올해 4월11일 불구속 기소됐다. 재판부는 다음달 14일 선고공판을 진행하기로 했다.
/오지현기자 ohj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