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금융 핫 키워드](2)즉시연금

이주 금융권을 달군 키워드 하나를 꼽자면 ‘즉시연금’이 아닐까 합니다. 사안을 아주 단순히 얘기하면 금융당국은 보험사에 ‘안 준 돈’을 소비자에게 ‘일괄지급’하라고 요구하고 있고, 보험사는 법적 근거도 없는 ‘일괄 구제’ 카드를 휘두르며 전체 생명보험사에 보험금 환급을 종용하는 것은 월권행위라고 반발하고 있는 상황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지 않은 돈을 내라고 하는 정당한 요구에 당국의 감독을 받는 보험사가 반기를 들 이유는 없을 겁니다. 즉시연금을 둘러싼 어떤 부분이 쟁점이 되는 것일까요. 궁금했던 지점을 하나 둘 일목요연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우선 즉시연금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즉시연금은 일시납 저축성보험을 말합니다. 고객이 퇴직금 등 목돈을 보험사에 일시에 맡기면 연금으로 지급 받을 수 있는 상품을 일컫습니다. 보험료 전액을 일시 납부하면 다음달부터 ‘즉시’ 매월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데서 ‘즉시연금’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즉시연금은 연금지급 방식에 따라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가입자가 생존 기간에 원금과 이자를 나눠 매달 연금을 지급받는 종신형, 생존 기간과 관계없이 약정 기간 동안 원금과 이자를 나눠 받는 확정기간형, 매월 이자만 연금으로 지급받고 원금은 만기 때 받는 만기환급형으로 나뉩니다. 특히 ‘만기환급형’은 2013년 초까지 생명보험사들이 판매에 열을 올린 상품입니다. 바로 ‘비과세 혜택’ 때문입니다. 2013년 초까지는 즉시연금을 10년 이상 유지하면 보험금에서 보험료를 제외한 차익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혜택을 노린 고액자산가들이 자녀에게 상속하기 위해 대거 가입하면서 상속형 즉시연금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세금 회피 목적으로 활용된다는 지적에 2013년 2월 세법 개정을 통해 즉시연금 비과세 한도가 인당 1억원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만기환급형 즉시연금은 지금도 목돈 투자법 중 하나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이번에 논란의 중심이 된 것도 이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입니다. 발단은 삼성생명 즉시연금 가입 고객 1명이 금융감독원에 낸 분쟁조정신청에서 비롯됐습니다. 강모씨는 지난 2012년 9월 10억원을 내고 10년 동안 매월 운용수익(이자)을 연금처럼 받는 삼성생명의 만기환급형 즉시연금에 가입했습니다. 이 상품은 만기가 되면 원금 10억원을 돌려줍니다. 매월 연금액은 공시이율로 산출되는데 공시이율이 아무리 낮아져도 2.5%는 주겠다는 최저보증이율 조건이 붙었습니다. 10억원을 기준으로 최저보증이율 2.5%에 해당하는 금액을 계산하면 연 2,500만원(월 208만원)이 됩니다. 강씨는 “금리가 아무리 떨어져도 매월 적어도 208만원은 받겠구나” 생각하며 해당 상품에 가입한 것이죠. 처음 3년은 문제가 없었습니다. 1년간은 매월 305만원, 그 뒤 2년간은 250만원 이상의 연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후 연금액이 뚝뚝 떨어져 136만원까지 내려앉았습니다. 강씨는 결국 “최소 월 208만원을 지급하라”며 금감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했습니다.

강씨의 연금액이 기대치를 밑돌고 결국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까지 간 데에는 ‘허술한 약관’과 ‘저금리 후폭풍’이 맞물린 이유가 큽니다. 우선 삼성생명이 실제 운용한 자산은 강씨가 낸 원금 10억원보다 적은 9억 4,000만원입니다. 대개 보험사는 원금에서 500만∼600만원을 사업비 등의 명목으로 먼저 제하고 남은 금액으로 자산을 운용해 그 수익을 주는데요. 이 운용수익은 순보험료에 공시이율을 곱해 산출하는데, 이것도 모두 지급되는 건 아닙니다. 만기 때 원금을 채워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매월 ‘만기 보험금 지급재원’이라는 명목으로 일정액을 떼고 그 잔여액을 연금으로 지급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저금리 기조까지 맞물리면서 공시이율도 하락하고 수익도 고꾸라지면서 갈등이 불거지게 된 겁니다.

금융당국은 강씨가 제기한 분쟁조정 건에 대해 강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 같은 상품 구조에 대해 보험 약관에 상세한 설명이 없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삼성생명은 반박했습니다. 약관에 ‘연금액은 산출방법서에 정한 바에 따라 계산한 금액으로 한다’는 문구가 있고 이를 어기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러나 금감원은 “산출방법서는 보험사 내부의 계리적 서류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약관으로는 연금액이 최저보증이율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삼성생명은 금감원 분쟁조정위 결정을 수용했습니다. 개별 민원에 대한 분쟁조정위 결과를 거부할 경우 ‘보복 검사’나 과징금 부과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일단락 될 줄 알았던 즉시연금 미지급금 문제는 이후 다시금 ‘즉시연금 사태’로 번지게 됩니다. 금감원이 분쟁조정위 판정을 근거로 즉시연금을 판매한 전 생명보험사에 덜 지급한 연금액을 소비자에게 돌려주라고 압박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금감원은 지난 5월 윤석헌 신임 원장 취임 이후 ‘소비자 보호’를 기치로 내걸며 금융권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일괄구제가 안 될 경우 일일이 소송으로 가야 하므로 행정 낭비가 많고 시간이 지나면 구제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며 “일괄구제로 가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수차례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문제의 즉시연금 가입자는 16만명에 달하고, 돌려줘야 할 보험금은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삼성생명 외에도 즉시연금 미지급금은 한화생명이 850억원, 교보생명이 700억원 가량입니다. 보험사들은 민원 1건에 대한 조정 결정을 전체로 확대 적용하라는 금감원 권고에 난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돈을 달라고 신청하지 않은 가입자까지 찾아서 돈을 주는 것은 법적·절차적으로 무리이며 내부적으로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겁니다. “보험이라는 게 위기(리스크)를 감내하는 것이고, 이에 대한 제반 비용도 당연히 수반돼야 하는데 이를 받지 말라는 건 보험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금감원은 “지난 10년간 보험규제를 풀어 보험사는 매년 수조원의 이익을 내는데 가입 고객은 사업비가 얼마인지조차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과도한 보험사 이익을 고객 이익으로 환원하는 게 맞는 방향”이라며 압박을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당국과 관련 업계의 이 같은 대치 속에서 지난 26일 삼성생명 이사회가 열렸습니다. 국내 생명보험사의 즉시연금 일괄구제를 놓고 일종의 ‘바로미터’가 될 삼성생명 이사회 논의 결과에 관심이 집중됐었죠. 삼성생명 이사회는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가입자에 대한 미지급금 일괄 지급안을 부결했습니다. 삼성생명 이사회는 “(미지급금 전액 지급은) 법적인 쟁점이 크고 지급할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이사회가 결정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며 “법원의 판단에 따라 지급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즉시연금 미지급금 전액을 일괄 지급하라는 금융감독원의 권고를 사실상 거부한 셈이지요. 이사회는 다만 소송 제기 등 법적 절차와 별개로 최저보증이율에 미치지 못하는 연금을 받은 고객에겐 일부 차액을 신속하게 지급하라고 경영진에 권고하겠다고 했습니다.

민원 해소 차원에서 절충안을 제시한 것 같지만, 결국 ‘법적 판단을 받겠다’는 게 삼성생명의 주된 입장인 만큼 당분간 당국과의 냉랭한 기운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금감원 측은 “삼성생명은 법적 문제가 있다고 반발하는데 금감원 내부적으로 법리 검토를 모두 거친 것으로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라며 “윤 원장까지 나서 강조한 것인데 삼성생명이 반기를 드는 모습을 보여 안타깝다”며 크게 당혹해 하는 모습입니다. 당국은 윤 원장의 하계 휴가가 끝나는 대로 조만간 입장을 정해 밝힐 방침입니다.

삼성생명 이사회 결정에 다른 생명보험사도 즉시연금 지급건을 두고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한화생명은 우선 금감원 분쟁조정위의 미지급금 지급 결정과 관련해 다음 달 10일까지 로펌 등의 법률 자문을 거쳐 의견서를 전달할 계획입니다.

한편 소비자단체인 금융소비자연맹은 즉시연금 가입자들 피해를 접수해 문제점을 분석한 뒤 당국 결정이 타당할 경우 원고단을 결성, 공동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아직 일괄구제 제도가 공식적으로 시행되지 않아 분쟁 조정 효력은 민원 당사자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에 혹 삼성생명 이사회 결정에 불만이 있는 소비자라면 당국에 개별 민원을 넣거나 소송을 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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