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고와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한 ‘클래식 수재’ 뮤지컬 배우 카이(37·사진). ‘엄친아’ 이력과 단정한 이미지로 인해 그동안 ‘도련님 전문’으로 무대에 섰던 카이가 요즘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서 앙리 뒤프레와 괴물 1인 2역을 맡아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프랑켄슈타인’은 메리 셸리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신이 되려 했던 인간과 인간을 동경했던 피조물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이기심과 생명의 본질을 통찰하게 하는 작품으로, 카이는 강한 소신을 가진 군인으로 전장에서 빅터를 만난 후 그의 연구에 매료돼 조력자로 나서는 앙리 뒤프레 역과 빅터의 피조물인 괴물 역을 능숙하게 표현해 뜨거운 박수를 받고 있다.
한창 공연 중인 그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만났다. 어눌한 말투의 앙리가 상당히 신선하다고 말을 건네자 “뮤지컬은 배우가 실현을 하지만 작품의 왕은 연출”이라며 “저 혼자서 캐릭터를 표현하는 독단은 배제했고, 왕용범 연출과 상의 끝에 재창조한 인물”이라고 자신의 공로를 연출에 돌렸다. 그는 이어 “새벽 2~3시까지 궁금한 점이 있으면 카카오톡으로 연출님께 보내는데, 그때마다 바로 답이 온다”며 “나도 이렇게 수 없이 고민을 하는데 이 작품의 창조자인 연출님은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어느 날 왕 연출에게 “나는 카이의 공연이 너무 기대된다. 너는 나의 ‘프랑켄슈타인’ 첫 변주야”라는 메시지를 받았다”며 그가 그토록 바랐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프랑켄슈타인’의 창조주로부터 나의 감정과 표현을 인정받은 순간이었죠. 기쁘다라는 말로는 표현이 안 돼요. 관객들에게도 너무나 감사합니다.”
왕 연출에게 인정을 받은 순간 그는 그가 선택한 길 또한 인정받은 듯했는지 지나온 길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10년 전 팝페라 가수로 데뷔한 계기가 있어요. 몇백 년 전 천재들이 만든 노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도 잘 안 되는데, 교수님 앞에서 시험을 볼 때 ‘피아노’로 부르라고 돼 있는데 ‘포르테’로 부르면 감점을 받는 상황에 대한 회의가 들었죠. 괴테의 시에 슈베르트의 곡이 붙은 음악이지만 제가 표현하고 싶은 방식이 있었고, 이러한 갈증을 해소하고 싶어서 (표현에 있어서 자유로운)팝페라를 선택하게 된 거죠.”
카이는 캐릭터에 대한 집요한 분석뿐만 아니라 캐릭터와 혼연일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배우로도 유명하다. 성악하던 시절에 100㎏이 넘었던 그는 부단한 노력 끝에 현재는 소위 말하는 ‘몸짱’ 배우가 됐고, 최근에는 남성 잡지 커버를 장식해 화제가 됐다. “살을 본격적으로 빼고 몸을 만든 건 뮤지컬 ‘벤허’를 할 때부터였어요. 그전까지는 ‘도련님 전문배우’였으니 몸을 만들 필요는 없었던 것 같아요. ‘벤허’ 때 옷을 벗어야 하니까 몸을 만든 것도 있지만 노예에 가까워지기 위해서 운동을 하고 식단을 조절했죠. 제가 너무 심하게 운동을 하니까 주변에서 “영화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해야겠냐”라고 핀잔을 주더군요. 그런데 저는 그 말에 더 화가 났어요. 공연은 직접 눈으로 관객들이 보는 건데 열심히 해도 영화보다 열심히 해야지 그게 무슨 소리인가라는 생각에서죠. 온전히 실감나는 연기에 다가가는 게 제 목적이고, 캐릭터에 다가가는 노력은 제 삶의 대부분입니다.”
카이는 라디오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여왔다. KBS 클래식 FM의 ‘세상의 모든 음악’을 2013~2014년까지 진행했고, MBC ‘복면가왕’에서 ‘가마니’로 출연한 이후 패널로도 참여하고 있다. 특히 그는 ‘복면가왕’을 가장 큰 배움의 장으로 꼽았다. “‘복면가왕’ 녹화시간이 굉장히 길어요. 그런데 그안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많이 접해요. 저는 늘 책으로 공부했는데 무대(현장)에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의 무대와 이야기를 보면서 겸손해졌어요. ‘벤허’를 하면서도 “카이가 많이 성장했다”라는 말을 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복면가왕’을 통해서 가장 많이 배우고 성장한 것 같습니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제공=E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