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STORY] 박진규 에넥스 대표 "회사 어려울때 대리점주 등 도움 손길...결국 남는건 사람이죠"

●현장경영 중시
워크아웃 직전 2010년 대표 맡아
협력사·대리점 등 돌며 소통 힘써
취임 3년만에 매출 뛰며 흑자전환
●사람이 곧 핵심자산
사람 투자가 기업의 핵심 경쟁력
퇴근시간 이후 PC오프제 실시 등
임직원 '일-삶의 균형' 실현 나서
종합 가구기업으로 도약 '부푼 꿈'

“2010년 대표이사직에 올랐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가 모든 기업들을 덮칠 때였습니다. 우리 회사는 아파트 분양 때 건설사에 공급하는 특판 비중이 높아 건설경기 침체로 직격탄을 맞았죠. 정말 벼랑 끝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죠.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위기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 제 주위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대리점주에서부터 협력사 대표, 부하 직원들까지 ‘같이 이겨내자’며 오히려 저를 응원하는데 그때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겠다는 직감이 왔습니다. 결국 내가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고 시간을 투자했던 사람들이 중요한 순간에는 저의 자산이 되더라고요.”

박진규(57·사진) 에넥스 대표이사 부회장은 국내 중견기업인 가운데 사람 중심 경영을 하는 대표적인 최고경영자(CEO)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국내 기업들의 경영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임직원의 ‘일과 삶의 균형’을 실현하고 근무만족도를 높이는 제도를 선제적으로 도입했다. 관행적인 야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올해 초부터 퇴근시간 이후 인터넷 등 PC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PC오프제’를 실시했고 사전 승인되지 않은 연장·휴일근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이처럼 직원들의 복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사람에 대한 투자가 곧 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같은 철학은 지난 2010년 대표 취임 직후 워크아웃 직전까지 갔던 회사를 결국 사람의 힘으로 다시 일으켜 세웠던 경험에서 더욱 굳어졌다. 올해 창립 47주년을 맞아 주방가구를 넘어 종합가구 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그를 서울 강남구 에넥스 본사 사옥에서 만났다.
박진규 에넥스 부회장 인터뷰./송은석기자

박 부회장은 1986년 옛 오리표싱크에 입사해 충북 황간공장에서부터 일을 배웠다. 회사 창업주이자 부친인 박유재 회장은 1976년 주방가구인 오리표싱크를 선보이며 국내에 최초로 입식 부엌문화 시대를 연 인물이다.

장남인 박 부회장이 처음 경영수업을 시작한 1980년대만 하더라도 오리표싱크는 국내 주방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오리표싱크는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신도시 건설과 주택 200만가구 사업이 궤를 같이하면서 아파트 특판 등 기업 간 거래(B2B)로 사업영역을 넓히며 사세를 키워나갔다.

1992년에는 사명을 에넥스로 바꿨고 이후 싱크대는 물론 주방가구와 붙박이장·현관장 등 시스템 가구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가구 전문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에넥스는 2008년에 찾아온 글로벌 금융위기를 버티지 못했다. 그동안 회사의 성장동력이었던 건설사와의 B2B는 건설경기 침체로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전락했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던가. 박 부회장은 1971년 설립 이후 회사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대표이사에 올랐다. 24년간 현장에서 경영수업을 받아왔지만 수백 명의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 대리점주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CEO 자리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박 부회장은 “부친께서 회사를 경영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이 길을 걷겠구나’라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지만 막상 기업환경이 좋지 않을 때 대표이사라는 중책을 맡게 되니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결국 그게 내 숙명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내 자신을 증명하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대표직을 수행하게 됐다”고 돌아봤다.

그는 2010년 대표에 오른 뒤 발이 닳도록 현장을 뛰어다녔다. 2세 경영인이라는 허울 좋은 간판은 내려놓고 현장 속으로 들어갔다. 하루 24시간을 쪼개 전국 100여개 대리점을 직접 돌며 사장들을 만났고 주요 협력업체·거래처들과도 직접 소통했다.


박 부회장은 “현장을 가보니 회사가 그동안 성공에 안주한 나머지 1차 소비자인 대리점주를 너무 소홀히 대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계속된 적자로 회사경영이 어려웠지만 현장을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낮은 자세로 소통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현장에서 ‘예전 대표이사들은 대리점 현장을 거의 오지 않았다’ ‘본사는 대리점의 적이다’와 같은 험한 말을 들으면서도 그들과 소통했다. 때론 같이 화를 내기도, 울기도 했다. 필요하다면 밤새 술잔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경영상태는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2012년 7월에는 주채권은행인 신한은행으로부터 신용등급이 C등급으로 떨어졌으니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이 될 수 있다며 협의하자는 내용의 공문을 받았다.

“회사가 망하면 사람들이나 직원들이나 마지막 CEO에게 손가락질을 하지, 전후 사정을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잖아요. 무엇보다 ‘아버님이 어렵게 일궈 놓은 회사를 이렇게 내 손으로 닫는구나’라는 두려움에 속으로 한참을 울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다. 그가 위기에 처하자 돕겠다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가 대표 취임 후 2년간 현장을 돌 때 면박을 줬던 한 협력업체 대표는 더 싼 가격에 부품을 공급할 테니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데 집중해달라”고 용기를 복돋워줬다. 대리점에 가면 물건을 더 팔아주겠다는 점주가 많았고 건설사에 가면 그동안 납품을 잘해왔으니 앞으로도 계속 쓰겠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회사 직원들도 한발씩 더 뛰었다. 박 부회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결국 남는 게 사람이더라”며 “진심을 갖고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겼더니 이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자산이 됐다”고 웃어보였다.

뼈를 깎는 사업 구조조정과 주위의 도움에 힘입어 회사 재무구조는 빠른 속도로 개선됐다. 박 부회장은 주방가구 비중을 전체 매출의 70% 정도로 낮추는 대신 일반가구와 사무용 가구의 비중을 높였다. 판매채널도 다양화해 한때 전체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했던 B2B 비중을 절반 이하로 끌어내리고 대리점 판매 비중을 높였다.

결국 에넥스는 박 부회장이 대표에 취임한 지 3년 만인 2013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매출액도 2013년 2,336억원에서 지난해 4,345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

박 부회장은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을 바탕으로 에넥스를 ‘100년을 이어가는 장수기업’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에넥스는 지난 47년간 주방가구 전문기업으로 독보적 기술력과 품질·서비스를 갖추고 있다”며 “앞으로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기업, 고객에게 감동을 전하는 기업이 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생산·제조·설치부터 AS까지 고객 맞춤 서비스를 제공해 만족을 넘어 감동을 선사하겠다”면서 “더불어 임직원이 근무하고 싶은 기업, 협력사와 상생해 지속 성장하는 기업,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되는 것도 목표”라며 말을 맺었다.
/서민우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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