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리츠, 성공의 경험을 만들라

이혜진 건설부동산부 차장


“시중에 돈이 너무 많아요. 투자할 곳을 찾는 대기자금이 이렇게 많으니 호재가 조금이라도 있는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리가 없지요.”

한 시중은행 프라이빗뱅커(PB)의 말이다. 부동산중개업소에도 예전보다는 확연히 줄었지만 여전히 갭투자 물건을 찾아다니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 부동산, 특히 집은 이미 ‘투자 자산화’가 이뤄졌다. 아무리 정부에서 집은 ‘사는(buy)’ 곳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라며 1주택자 위주의 정책을 편다 해도 부동산은 개인들에게 투자 1순위이다.

부동산 직접투자에 쏠린 개인들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여러 문제를 낳는다. 주택 시장에 몰린 돈은 집값을 올리고 주거비용도 늘린다. 부동산 구매에는 대출이 필요하기도 하고 쉽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 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 증가의 주범이기도 하다.


부동산 직접투자와 주식으로 양분된 개인들의 투자자산 시장과 관련해 최근 주목할 만한 일이 생겼다. 신한알파리츠가 리츠 공모 사상 최대 금액인 5,000억원을 끌어모으며 4대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한 것이다. 부동산 간접투자 상품인 리츠는 저조한 수익률과 운용사의 불법행위까지 겹치며 개인들로부터 외면받아왔다. 그래서 이번에 1,000억원이 넘는 공모물량이 완판될지 시장에서 반신반의했으나 기대 이상의 성적이 나왔다. 기존의 리츠에서는 볼 수 없었던 우량한 오피스 물건에 투자하는데다 마케팅과 자본력을 갖춘 금융지주 계열의 운용사가 뒤에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그보다도 연 5~6%선의 중위험-중수익을 추구하는 대기성 자금이 많다는 점이 흥행의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리츠는 주식처럼 사고팔기가 용이한데다 정기배당을 실시해 고령화 시대에 고정수입을 원하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인 부동산 간접투자 수단이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활성화됐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서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늦게나마 리츠가 국내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개인들의 성공한 투자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 주가연계증권(ELS)이 국민 재테크 아이템이 된 것은 이 때문이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중년·고령의 투자자뿐 아니라 젊은 층도 어려워하던 금융상품이었다. 은행 이자보다 높은 쏠쏠한 수익을 맛본 이들이 다시 ELS를 찾으면서 대체투자의 한 축으로 자리했다.

리츠 투자자들에게 성공 경험을 안겨주기 위해서는 운용사와 관계당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리츠를 손쉬운 자산 유동화의 수단으로 악용하면 소탐대실이 될 것이다. 우량한 부동산을 좋은 가격에 사들여 안정적인 배당을 돌려줘야 한다. 공모 완판에 급급해 과대 홍보를 하거나 장밋빛 수익률로 개인들을 현혹해도 안 된다. 리츠 활성화에 마중물이 될 만한 ‘괜찮은 상품’을 내놓는 게 핵심이다.

올해 리츠 시장은 변곡점에 섰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대규모 리츠가 잇따라 상장되고 연말에는 조 단위 리츠도 상장될 예정이다. 만약 올해 상장되는 리츠들이 다시 한번 투자자를 실망시킨다면 개인들을 위한 부동산 간접투자 시장 활성화를 위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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