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BOJ)이 시장의 예상처럼 정책금리를 동결했지만 장기금리 상승은 일정 부분 허용하기로 했다. 일본은행이 20개월 만에 처음으로 장기금리 정책 기조를 수정한 것으로 금융완화 정책 장기화에 따른 금융기관의 수익 저하와 국채거래 저조 등 금융시장의 부담을 덜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31일 일본은행은 금융정책 결정회의를 열어 정책금리를 -0.1%로, 장기금리로 불리는 10년 만기 국채수익률 목표치를 0% 수준으로 하는 현행 정책금리를 유지하기로 했다. 다만 0~0.1% 수준으로 유지해온 데서 변동폭을 넓히기로 해 사실상 금리의 일정 부분 상승을 허용한 것이다. 일본은행이 장기금리 정책을 수정한 것은 지난 2016년 9월 이후 처음이다. 그동안 일본은행은 10년물 국채금리가 0.1%를 넘어서면 지정한 금리로 국채를 사들이며 금리상승을 의도적으로 억제해왔다. 이날 일본은행도 성명에서 “장기 국채금리는 물가와 경제 여건에 따라 상하로 늘어날 수 있다”며 금리 완화정책의 전환 가능성을 확인했다. 국채매입 수준도 ‘보유 잔액이 연 80조엔 수준으로 늘어나는 수준’으로 정한 현행 목표를 유지하되 이 같은 목표를 탄력적으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은행의 이날 정책기조 변화는 금융완화 정책으로 인한 초저금리 장기화에 따른 부작용과 시장의 우려를 해소하는 동시에 아베노믹스의 기조인 금융완화 정책을 일정 기간 지속하겠다는 속내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장기금리 변동폭을 넓히는 방식으로 사실상 금리의 일정 부분 상승을 허용해 부작용을 줄이면서 금융완화 정책의 지속성을 유지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일본은행은 이날 회의 후 성명을 통해 “내년 10월로 예정된 소비세 인상의 영향을 포함한 경제·물가의 불확실성을 고려해 당분간 현재의 극히 낮은 장단기 금리 수준을 유지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도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일본은행의 조정이 금리 인상을 시사하는 것은 아니라며 아베노믹스에 힘을 싣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는 “금리 변동폭 허용은 시장 기능 개선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라며 “이날 일본은행의 조정은 금융완화 정책 지속을 강화해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번 조정으로) 장기금리 변동폭이 2배 정도 늘어날 것”이라며 “다만 금리가 급상승할 경우 무제한 채권 매입 등으로 신속히 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로다 총재의 발언이 전해지면서 상승세로 출발한 시장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날 엔화가치는 일본은행이 정책을 일부 조정했다는 소식에 급등했지만 이후 일본은행이 상당기간 초저금리가 유지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하락 전환했다. 10년물 일본 국채금리도 급락했다.
아울러 일본은행은 금융완화 정책의 일환으로 실시하는 상장지수펀드(ETF) 매입과 관련해서도 연간 매입액을 6조엔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다만 토픽스에 연동하는 ETF 매입분을 2조7,000억엔에서 4조2,000억엔으로 늘릴 방침이다. 한편 일본은행은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을 기존 1.3%에서 1.1%로, 내년도는 1.8%에서 1.5%로 각각 낮춰 잡았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