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인터뷰] 한상진, ‘단역 연기 노하우’? “하나 이상 알려주면 과부하 걸려”

‘인형의 집’ 한상진, 10년 전 슬럼프..‘하얀거탑’과 ‘이산’이 터닝포인트
“매일 매일이 인생의 오디션”
“‘원포’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중에 가장 행복한 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게 싫었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악인이었던 ‘장명환’은 배우 한상진을 통해 다시 태어났다. “제 안에 악이 있더라“며 웃음을 터트리는 한상진은 여전히 드라마 속에 빠진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타협’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게 악역들은 시대적인 사명, 과거의 상처 등 악한 행동에 대한 이유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당위성을 없앴어요. 그래야 천하의 나쁜 놈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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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은 지난 20일 종영한 KBS 2TV 일일드라마 ‘인형의집’(극본 김예나 이정대·연출 김상휘, 제작 숨은그림미디어)에서 장명환 역을 맡았다. 한상진은 극악무도한 악역으로 분해 왕빛나, 박하나, 최명길 등 등장인물과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인형의 집’을 위해 배우 한상진은 살을 빼고 이를 가는 것은 물론, 리얼리티를 위해 죽도를 가져와 지인들에게 자신의 등을 실제로 때려달라고 했다. 그는 악행은 이유가 없을 때 진짜 악행이기 때문이다고 바라봤다. 그렇기에 “명환의 행동에 합리화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명환이 나쁜 짓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없어요. 단지, 그냥. 그게 이유예요. 그냥 나쁜 것이다.”고 말했다. 그만큼 한상진의 연기 철학은 확고했다.

1997년 데뷔해 2000년부터 본격 연기를 시작한 한상진은 2007년 MBC 연기대상 신인상을 받을 때까지 사촌 이내만 알아주는 ‘가내수공업 탤런트’였다.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배우’라고 스스로 칭하기도 민망했다. 배우에 대한 열정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커졌다고 했다. 2006년, 결단을 내리고 LA로 떠났다.

“연기가 너무 좋았어요. 하지만 10년 넘게 무명 배우로 연기 하다 보니 지치더라고요. 일이 너무 안 풀리니까 저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지기도 했고요. 당시에는 배우를 더 하면 정말 연기를 증오하게 될 것 같았어요. 연기하며 보냈던 10년이란 세월을 부정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떠나자고 결심했어요. 이 일을 좋게 기억할 수 있을 때 그만하자고.”

행운의 여신은 그의 편이었다. 이민을 결심하고 떠난 미국에서의 첫날 밤, 한국에서 드라마 오디션을 보자는 전화가 왔다. 그가 해외임을 밝히자 전화를 했던 감독은 ‘알겠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보자’는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전화를 끊은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오디션을 보기 위해 다시 한국으로 입국했다. 그렇게 만난 작품이 MBC ‘하얀 거탑’이다.

“하늘에서 선물을 준 것 같았어요. 나의 부족함을 깨닫자마자 하늘에서 ‘옜다, 수고했다’하고 선물을 주신 거죠.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되게 무서워요. 그때 내가 돌아와서 ‘하얀거탑’을 안 했더라면, ‘이산’을 안 했더라면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금의 저는 절대 없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하루하루를 오디션 본다고 생각하며 살아요”

그렇게 그는 ‘하얀 거탑’에서 장준혁(김명민 분)의 신뢰를 받는 의사 ‘박건하’ 역을 맡으며 사람들에게 존재감을 알렸다. 같은 해 그는 MBC ‘이산’에서 정조의 최측근 ‘홍국영’ 역을 맡으며 데뷔 7년 만에 신인상을 받는 기쁨을 누렸다.


“매일 매일이 인생의 오디션”이라고 말한 한상진은 “배우의 길을 가는데 있어 누가 더 절실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전했다. “신인 때 누가 등용돼서 신인상을 받더라도 누가 더 일에 절실하게 생각하느냐가 캐스팅의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의 마음을 담아, 단역 배우들이 출연하는 유튜브 계정 ‘원포인트’(원포)를 운영하고 있다. ‘원포’는 무명 단역 배우들을 초청해 한상진 본인이 오랫동안 단역 생활을 거쳐 오며 얻은 ‘단역 연기 노하우’를 전수하는 유튜브 채널이다. 그는 ‘원포’를 통해 “무명 배우들도 편하게 나와서 말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 배우들이 와서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라고 말하면 다들 우세요.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없었던 거다. 저희 채널에 나오면 큰 돈은 아니지만 출연료도 주고 있어요. 절대 대충 할 수 없어요. 그들에겐 운명이 달려 있는 시간이에요.”

”채널명인 ‘원포인트’는 원포인트 레슨이라는 뜻을 담았다. 한 가지만 알려준다는 의미다. 이제 막 시작하려는 배우에게 하나 이상을 알려주면 과부하가 걸린다. 쉽게 말해 회사원 연기를 할 때는 복사하는 연기만 알려주면 된다. 신인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는데 아무도 그 시절 필요한 연기 포인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 내 단역 시절의 연기를 후배들이랑 나누고 싶었다.“

주인공 연기만 주목받고, 주인공 연기만 알려주는 학원이 많은 현실에서 그가 전한 생각은 참신했다. 실제로 신인 배우들이 누구나 배우고 싶어하지만, 단역을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학원은 없었다.

“막상 드라마 무대에 오면 단역들은 한 1초 나오고 끝나요. 실제 처음 현장에 투입되면 긴 대사를 주지 않거든요. 그 1초도 엄청나게 소중한 시간이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잘 해야 다음 연기로 나아갈 수 있는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아요. 주인공 둘이서 연애신을 찍는데, 그 옆에서 밥 먹는 단역을 해야 할 때, 밥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연기하다가 혼난 경험도 있어요. ‘밥 먹는 연기를 누가 그렇게 하느냐’고. 그런 단역 연기를 알려주는 곳이죠. ”

사진=(24일 강남 압구정 쉬림프 팩토리에서 열린 라운딩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는 한상진./김소라 인턴기자)


4개월 전부터 시작한 ‘원포’는 최근 구독자 100명을 돌파하며 입소문을 타고 있다. “저희는 다른 유튜브 방송처럼 자극적이거나 큰 웃음을 주는 경우가 적다. 유튜브 계의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라고 할까. 혹시라도 많이 늘어난다면 배우들의 출연료를 올려주고 싶다. 또 제작비를 현실화 시켜줄 거다. ”

‘원포’는 의미있는 일도 계획 중이다. 채널에 출연하셨던 신인 배우 중에 영화든 드라마든 작품 포스터에 그 사람 이름이 들어가면 그 촬영장에 커피차를 보내드리고 있는 것. 여기에 더해 한상진이 직접 운전대를 잡고 촬영장까지 모셔다 드릴 계획이다. 그는 “‘원포’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중에 가장 행복한 일이다.”고 진심을 전했다.

‘빨리 가면 혼자 가고 멀리 가라면 같이 가라’는 말이 있다. 한상진이 자주 쓰는 말이란다. 그는 “난 배우를 멀리, 길게 하고 싶다. 그러다 보니 초심을 생각하게 됐다.”며 후배들을 챙기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물론 본인의 초심을 되새길 수 있어 본인에게 오히려 더 도움이 된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7년 동안 무명 생활을 하며 슬럼프가 왔어요. 이후 일이 잘 풀리면서 초심을 잃게 되더라. 첫 마음을 늘 가질 수는 없지만 그때를 생각하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게 느껴졌어요. 사람이 계속 상승세를 탈 수는 없어요. 평지를 걸어갈 때도 있고 내리막길을 걸을 수도 있어요. 난 지금껏 평평하게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걸어온 길이 내리막인지 오르막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과거를 돌아보게 됐다. ”

“고민하다 보니 내가 처음 연기를 한 이유, 그때의 태도를 되살리며 처음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상승세가 많았던 거다. 그때부터 조금 느리더라도 내가 가파르게 올라가지 않더라도 뒤를 챙겨보고 사람들과 함께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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