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째 열대야가 이어진 지난 1일 밤 대규모 정전이 발생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선경아파트에 한국전력의 긴급 복구차량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성동구 응봉동의 한 아파트 주민들은 지난달 29일 오전 때아닌 폭발음을 들은 뒤 망연자실했다. 아파트 내 변압기가 높은 전력 사용량을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전기 공급이 멈추자 주민들은 30도를 웃도는 실내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아파트 앞 카페는 이미 폭염을 피해 나온 주민들로 가득 찼고 인근에서 머물 곳을 찾지 못한 주민들은 대형마트 등을 찾았다.
기록적인 폭염이 지속하면서 노후 아파트를 중심으로 정전사태가 잇달았다. 2일 한전에 따르면 지난 1일 정오부터 자정까지 12시간 동안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서만 아파트 단지 17곳에서 긴급 정전신고가 접수됐다. 전기안전관리자를 두고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사례는 집계되지 않아 실제 정전사태로 불편을 겪은 주민들은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7월 한 달간 전국 아파트 정전을 봐도 지난해 7월 43건에서 올해 91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수도권으로 한정하면 같은 기간 15건에서 56건으로 네 배가량 폭증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정전과 관련한 글이 줄을 이었다. 서울 관악구 현대아파트의 한 주민은 “관리사무소에서 ‘에어컨을 끄고 선풍기를 이용해달라’는 방송을 열흘째 내보내고 있다”면서 “전력소모량이 계속 늘어나면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는 식”이라고 불편을 호소했다.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 주민은 “단지 전체가 정전돼 가족들과 냉방이 되는 호텔로 긴급 피서를 왔다”며 “같은 아파트 주민들도 피난(?)을 떠나는 형국”이라고 밝혔다.
정전이 이어지면서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아파트 1단지 주민이라고 밝힌 한 시민은 “아내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정전이 돼 15분 정도 갇혀 있다가 잠깐 전기가 들어온 틈에 겨우 탈출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경기도 고양시, 전라북도 익산시, 대구 등 전국 아파트 단지에서 길고 짧은 정전이 이어졌다.
이러한 정전사태의 원인은 대부분 전력설비 고장이다. 한전 관계자는 “사소한 부품 고장이 정전으로 확대되는 사례가 많아 평소 정기적인 점검과 유지보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어진 지 25년이 지난 노후 아파트의 정전 발생률은 15년 미만 아파트에 비해 9.5배 높아 주의가 요구된다. 한 노후아파트 주민은 “아이들이 어려 조금만 더위에 노출돼도 탈진할 수 있어 걱정된다”며 “정전에 대비해 간단한 옷가지와 물건을 캐리어에 챙겨뒀다”고 말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전국 낮 최고기온은 경북 의성 39.8도였다. 전날 같은 시간대에 비하면 1~2도 낮은 수준이지만 당분간 낮 최고기온 35도 이상의 폭염이 이어질 것으로 기상청은 내다봤다. /오지현·서종갑·진동영기자 ohj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