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개봉한 영화 ‘킬로투브라보’는 특이한 전쟁영화다. 2006년 아프가니스탄 카자키 댐에 주둔하고 있는 영국군 18명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에는 끝까지 적이 나오지 않는다. 18명의 영국군이 싸우는 대상은 땅속 지뢰다. 감독은 다국적군이 절대악으로 규정한, 그래서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을 끝까지 숨기는 대신 땅속 지뢰를 영국군의 적으로 내세운다. 지뢰를 밟은 영국군은 하나둘씩 발목이 절단되고 몸이 부서지면서 죽어간다. 대의명분 뒤에 숨은 전쟁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감독의 발상이 영민하다.
인류사는 전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인류사에는 셀 수 없는 많은 전쟁이 있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전쟁은 아주 극소수인데 역사책에 기록된 전쟁은 판박이와 같은 특징이 있다.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명분이 있고, 시대를 바꾼 영웅이 있다.
‘전쟁의 재발견’은 이 같은 전쟁에 대한 인식에 반기를 드는 책이다. 총 분량 6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전쟁의 핵심은 남을 죽이거나 자신이 죽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바라본 전쟁은 일부의 영웅을 드러내고 명분을 내세우는 데 그쳤다. 그러나 전쟁이 낳은 죽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극적이지 않다. 전쟁의 진짜 모습은 참혹하게, 그리고 어이없게, 죽어간 민초들의 역사다.
군사사가이자 저술가인 저자는 역사 속에서 길어올린 많은 사례들로 이를 입증한다.
고대전투는 밀집대형(팔랑크스)으로 전개됐는데 군인들은 적의 창에 찔리거나 화살에 맞아 죽기보다는 압사와 질식사로 죽어 나갔다. 또 중세시대 전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늠름한 기사가 날렵하게 말 위로 올라 창을 휘두르며 나약한 보병들을 쓰러뜨리는 양상이 아니었다. 기사는 말에서 내려 싸우는 일이 흔했고 진흙투성이 땅이나 울퉁불퉁한 땅에서 처절하게 싸우는 것이 진짜 모습이었다. 18세기 머스킷총이 전장의 무기로 등장했지만 군인들은 잦은 장전 실수로 오히려 창이나 검을 든 적에게 쉽게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책 제목에 ‘재발견’을 단 이 책은 모든 재발견이 그러하듯 관점의 전복을 시도한다. 죽이는 자가 아닌 죽는 자의 관점. 작가는 이러한 관점의 전복을 통해 이 시대, 혹은 다가오는 시대에 발발할 전쟁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2만8,000원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