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이하 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마련된 자동차 연비 기준을 시행하지 않고 대폭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각국의 환경단체는 거세게 반발했지만, 이미 트럼프의 미국은 자국 경제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전 세계 환경보호쯤은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미국의 보호주의 선회는 올해 1월30일 “경제적 굴복의 시대는 끝났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국정연설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는 여러 나라와 맺은 자유무역협정(FTA), 다자협정에 대한 불공정을 지적한 것으로, 앞으로는 그가 생각하는 불리한 협정에서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자 중국을 상대로 한 무역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시그널이었다. 급기야 지난 7월 미국은 340억달러어치 중국 수출품에 25% 추가관세를 부과했고, 중국도 같은 방식의 보복조치를 같은 시각 발동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기어이 미·중 무역전쟁의 서막이 열리고 만 것이다.
국제정세 분석가인 피터 자이한 스트랫포 부사장이 쓴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은 세계인들을 긴장하게 하고 있는 트럼프의 ‘새로운 미국 시대’가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도래할지에 대해 예측했다. 특히 저자는 “트럼프가 추구하는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질서를 규정했던 브레튼우즈 체제가 끝나가면서 자유무역과 안보동맹이 쇠퇴하고 지정학이 부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브레튼우즈의 본질은 소련에 맞서기 위한 안보동맹 체제로, 미국이 안보를 주도하는 대신 동맹국들에 경제적 이익을 주는 체제였다.
미국은 이 체제를 이용해 동맹국들에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을 허용했고, 미국은 오랜 기간 무역 적자를 감수해야만 했다. 그런데 냉전시대는 이미 30년 전에 끝이 났고, 미국의 안보상황 역시 변했으며 이에 따라 안보정책 역시 변했다. 이는 곧 세계화된 자유무역의 종언을 의미하며, 이러한 시대를 트럼프가 실행하고 있다는 것. 저자는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식과 함께 미국은 세계의 보안관 역할에서 물러나 핵무장 국가인 러시아로부터 유럽을 지키기 위해 나서지도 않을 것이며, 에너지의 유통을 보장하기 위해 중동에 군대를 주둔하지도 않을 것이며, 아시아를 위해 해로의 안전을 지켜주지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렇게 되면 결국 미국이 있는 서반구를 제외하고 동반구 전체가 안보와 시장, 자원을 놓고 싸우는 거대한 ‘지정학의 전쟁터’로 바뀌게 될 것이다.”
‘셰일 혁명’으로 불리는 미국의 ‘셰일 에너지붐’ 역시 세계 정치의 지형을 바꿔 놓을 것으로 전망했다. 중동에서 석유를 수입하지 않고도 에너지의 자체 수급이 가능하기 때문에 미국이 중동 정세와 거리를 유지해도 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값싼 셰일 덕에 에너지 비용이 낮아져 산업 경쟁력을 갖게 됐다. 미국은 하루 석유 수입량이 과거 2,000만 배럴이었지만 현재 1,000만 배럴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조만간 에너지 자급 상태에 도달할 것이다.
인구구조의 역전 또한 저자의 관심사다. 그는 “전 인구 연령층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고 고령화함에 따라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들고 자본창출이 축소되며 이는 경제 위축을 야기한다”고 봤다. 그러자 저자는 “인구구조의 위기는 유럽, 러시아는 불론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주요 국가들을 엄습할 것이지만 미국은 상대적으로 역동적인 인구구조와 고숙련 근로자의 이민을 통해 사회의 활력을 유지할 것”이라며 “미국은 지금도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이지만 인구구조의 변화로 미국이라는 시장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미국의 전략적 동반자 그룹에 들어가야만 새로운 미국 중심의 시대에 살아남을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러나 한국은 지금 미중 무역전쟁의 틈바구니 속에 수출 엔진은 힘을 잃고 내수는 부진의 늪을 허덕이고 있다. 미국 일방주의의 새로운 지정학적 시대를 맞아 한국은 어떤 전략으로 살아남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1만8,000원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