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27일 판문점 도보다리 위에서 비핵화 방안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북한은 종전 선언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비핵화 실행방안을 우선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4·27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된 ‘판문점 선언’이 4일 100일째를 맞이하면서 그 이행 성과와 향후 과제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판문점 선언을 기점으로 남북과 북미 간 대화 기조가 한층 가속화됐으며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도 어느 정도 완화된 상태다. 합의 이행이 지속된다면 이르면 오는 9월, 늦어도 연내에는 당사국 간 한국전쟁 종전 선언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이 완전한 핵 폐기에 이르는 구체적인 조치에 나서느냐가 변수다.
◇자평하는 靑=청와대는 3일 판문점 선언 채택 100일째를 하루 앞두고 “국민의 삶에서 평화가 일상화된 100일”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이어 “앞으로 국제사회와의 협력과 국민의 공감대를 토대로 한반도 비핵화, 평화체제 구축, 남북관계 정상화 등 평화와 번영을 제도화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올해에는 북한의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가 전무하고 시험장 폐기 등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을 근원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조치들도 시작됐다”며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도 해소 기미를 보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남북 군사 당국 대화를 통한 신뢰 구축으로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의 위험성도 제거됐고 남북 간 대화도 일상화됐다”며 “11년 만의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으로 남북관계는 단순 복원을 넘어 새롭게 출발했다”고 평가했다.
◇남북미 간 대화는 지속=북한은 선제적 조치를 취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판문점 선언 이후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동창리 미사일시험장 폐기 등을 단행했다. 남북 간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군사 당국 간 상시 연락 채널이 복원됐고 군사 당국 대화도 정례화됐다. 이어 북미정상회담이 이뤄지고 남북과 북미 정상 간 친서 교환, 고위급 핵심인사들의 교차 방문이 이뤄졌다. 외관상으로는 비핵화와 종전 선언을 위한 접촉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서경 펠로(자문단)인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가장 의미 있는 결과는 정상 간 신뢰가 더 두터워졌다는 점”이라며 “지난해 일촉즉발의 상황과 비교하면 평화의 문이 넓어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선 미군 유해 송환에 즈음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1일 친서를 전달하고 그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답장을 써 주목된다. 김 위원장이 보낸 친서와 트럼프 대통령이 곧 보낼 친서에 대해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2일(현지시간)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이뤄진 공동성명에 나오는 약속을 다루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는 현재의 교착 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톱다운’ 방식의 복원 시도로 보인다. 실제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벽에 부딪힌 형국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비핵화 로드맵 없으면 속 빈 강정=표면상으로는 북한 비핵화를 위한 대화가 지속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재로서는 알맹이가 없는 상태다.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서는 아직 성과보다는 과제가 더 많이 남아 있는 셈이다. 잘못하다가는 ‘속 빈 강정’이 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군 당국자는 “이미 북한은 6번의 핵실험과 여러 차례의 중·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를 통해 사실상 핵보유국에 준하는 수준의 데이터와 기술력을 확보했다”며 “아직은 핵 폐기라고 확증할 만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에 개발된 핵무기를 공개하고 봉인·처분하려는 실천적인 조치가 나와야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도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북한의 핵시설 신고부터 이뤄져야 한다”며 “남북교류 등에 진전이 있는 데 비해 종전 선언과 비핵화 추진 작업은 속도가 다소 뒤처져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도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입증해야 종전 선언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반면 북한은 이미 성의를 보인 만큼 이제는 한미가 종전 선언, 대북제재 해제와 같은 조치에 나서야 할 때라는 논조로 자국 기관지 등을 통해 압박에 나서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르면 이달 중 3차 남북정상회담에 나서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민병권·박효정기자 newsroo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