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창이 다 부스러져 가루가 되다시피 한 고(故)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사진제공=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
고(故)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의 밑창을 복원하고 있는 김겸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 대표./사진제공=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
지난 2015년 이한열기념관에서 김겸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 대표에게 밑창이 부스러진 ‘타이거’ 운동화 한 짝을 들고 왔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최루탄을 맞고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씨가 당시 신고 있던 신발이었다. 쉽지 않은 작업이 예상됐지만 “치료가 가능하겠습니까”라는 기념관 관장의 질문에 김 대표는 “예, 가능합니다”라고 답했다.
미술품 복원가인 그가 미술계 밖으로도 이름이 알려지고 다양한 근현대 유물 복원을 맡게 된 것도 이 시점부터였다. 운동화 복원 작업을 맡게 된 이유를 묻자 김 대표는 “복원해야 하는 운동화의 밑창은 폴리에스터 우레탄이라는 합성수지로 현대 미술에서 자주 쓰는 소재였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박물관에는 청동·철·나무 등으로 만들어진 문화재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박물관 관계자들이 합성수지를 많이 다뤄본 김 대표를 전문가로 추천한 것이다.
김 대표가 마주한 운동화의 밑창은 가벼운 손길이나 충격에도 모래처럼 부스러져버리는,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였다. 작업은 쉽지 않았다. 김 대표는 우선 조각들을 굳히기로 했다. 하지만 조각이 어느 정도 굳은 후에도 운동화 밑바닥 패턴을 맞추기는 쉽지 않았다. 멀쩡한 타이거 운동화 밑창과 비교하려고 해도 이미 도산하고 없어진 타이거 운동화를 찾기 어려웠다.
운동화 끈이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묶여 있어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봉착하기도 했다. 끈을 묶어놓은 모양새는 운동화 주인의 개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김 대표는 “복원하는 대상이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이기 때문에 그 인물의 개성·성격·손길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기록에는 손을 대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운동화 끈을 풀지 않기로 하면서 남은 작업 과정은 훨씬 힘들어졌다. 그 이후 운동화는 3개월에 걸친 집중 치료를 받고 다시 기념관으로 돌아갔다. 다시 태어난 운동화는 새로운 기억도 만들어냈다. 운동화를 복원하는 과정이 소설 ‘L의 운동화’로, 운동화 주인인 이한열 열사가 살아 있던 때를 배경으로 한 영화 ‘1987’이 개봉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에세이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에서 운동화를 복원한 후의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이한열의 운동화를 비롯해 힘든 작품일수록 작업 과정에서 이미 수많은 상념의 터널을 지나야 하기에, 정작 작업이 끝난 후에는 아무런 마음의 잔상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난히 어깨를 짓눌렀던 운동화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복원을 마친 고(故)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밑창/사진제공=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
복원을 마치고 기념관으로 돌아간 고(故)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사진제공=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