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워싱턴포스트(WP) 등 미 언론에 따르면 핵심기업들이 중국에 기밀을 유출하려는 내부 직원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연방수사국(FBI)은 지난 1일(현지시간) 4년에 걸친 수사 끝에 제너럴일렉트릭(GE)의 중국계 미국인인 정샤오칭을 체포했다. 2014년부터 GE의 산업기밀을 담은 수천 개 파일을 빼돌린 후 이를 중국으로 보낸 혐의다. 그가 유출한 정보에는 GE의 에너지·발전 분야 계열사인 GE파워의 터빈 기술 등이 담겨있었다. FBI에 따르면 정샤오칭은 지난 2년간 다섯 번 중국을 다녀왔고, 그의 자택에서 기술 정보를 제공하는 개인에 대한 중국 정부의 보상 내용을 담은 안내서가 발견됐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중장비 가스 터빈 /홈페이지 캡처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애플에서도 내부 직원에 의해 미래 핵심사업 기밀이 유출될 뻔했다. 애플 자율주행 사업의 기밀을 훔친 혐의로 전직 애플 엔지니어인 장샤오랑이 지난달 기소됐다. 자율주행차 회로기판의 비밀정보를 훔쳐 중국 자율주행차 스타트업 샤오펑모터스에 취업하려 한 혐의다. ‘타이탄’으로 불리는 애플의 자율주행 사업 관련 정보는 직원 13만5,000여명 중 3.7%에만 공유되는 기밀정보다. 그가 재취업하려던 샤오펑모터스는 폭스콘과 알리바바 등 중화권 정보기술(IT) 거물들이 투자하는 곳이어서 이번 정보가 새나갔을 경우 애플과 미국에 치명타가 될 수 있었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과거 워싱턴이나 뉴욕 유엔본부에 집중돼 있던 중국과 러시아의 스파이 행위가 이제 실리콘 밸리로 옮겨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애플 자율주행차 이미지 /유튜브 캡처
중국과의 첩보전이 경제적으로 얽혀있다면 러시아와의 첩보전은 정치·군사적 문제가 핵심 사항으로 평가된다. 지난 미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했다고 판단한 미국은 오는 11월 중간선거와 2020년 대선을 앞두고 러시아에 대한 방어망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러시아 스파이로 의심되는 직원이 10년 넘게 근무하다 적발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미국 사회에 충격을 줬다. 러시아 국적의 이 여직원은 2016년 국무부 지역보안과(RSO)가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보안 검사에서 의심스러운 정황이 포착되기 전까지 수년간 미 비밀경호국(USSS) 소속으로 대사관에서 근무했다.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미 연방수사국이 공개한 사진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러시아 여성 마리아 부티나(29)가 첩보요원으로 의심되는 한 러시아 외교관과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워싱턴DC=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워싱턴DC는 성로비까지 일삼은 ‘러시아 미녀 스파이’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총기 소지권 옹호론자인 마리아 부티나가 워싱턴DC에 거주하면서 러시아와의 비밀 연락망을 구축하고, 크렘린의 지시로 미국의 정치조직에 침투하려 한 혐의로 붙잡혀 조사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FBI는 부티나가 지난 3월 첩보요원으로 의심되는 러시아의 한 외교관과 저녁 식사를 하는 사진을 입수했고, 옛 소련 국가정보위원회(KGB)의 후신인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요원들로 의심되는 인물들의 연락처를 소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미 의회는 초당적 차원의 러시아 제재법안 마련에 나섰다. 양당 의원들이 러시아 국채 매입을 제한하는 내용 등이 담긴 법안을 공개한 것이다. 러시아 국채의 4분의 1을 외국인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인의 러시아 국채 매입 금지는 러시아를 견제할 강력한 무기로 평가돼왔다. 또 법안에는 러시아 7대 은행과의 거래 금지, 러시아 대통령 개인 자산평가 보고서 제출 등을 요구하고 내용이 담겼다.
존 볼턴(왼쪽부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지난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공동브리핑을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워싱턴DC=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안보 수장들도 이례적으로 백악관에 모여 공동 성명을 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FBI) 국장, 커스텐 닐슨 국토안보부 장관, 폴 나카소네 국가안보국(NSA) 국장 등 안보를 책임지는 수뇌부들이 총출동했다. 이들은 지난 2일 백악관 공동브리핑에서 “러시아의 선거개입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볼턴 NSC 보좌관은 “러시아는 옛 소련 시절부터 미국 사회에 개입하려고 시도해왔고,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라고 경고했다.
이란 핵합의 탈퇴 이후 미국은 이란의 해킹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로켓 키튼(Rocket Kitten)’ 등 이란의 해킹 그룹의 타깃이 미국의 방산기업을 조준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미국의 방산 정보가 새나갈 경우 이란 미사일 제조에 악용될 수 있다고 판단한 미국은 이란 사이버공격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고 있다. ABC뉴스는 “그동안 이란의 타깃은 중동의 앙숙인 사우디아리비아와 이스라엘이었다. 하지만 경제적 이익, 군사 현대화, 수출 증대를 위해 미국의 기술을 빼내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