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전기자동차 생산기업인 BYD의 한 직원이 ‘BYD 선전 전시장’에서 전기차 충전 시범을 보이고 있다. /선전=이호재기자
중국 선전시 룽강구에 위치한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의 본사. 한 직원이 차세대 초고속통신 ‘5G’ 전시관 천장에 붙은 TV 셋톱박스 모양의 제품을 가리켰다. 그는 “우리의 5G 통신장비”라며 “배터리 하나로 10년 동안 작동할 수 있는 기지국”이라고 말했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5G를 지원하는 제품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4G인 롱텀에볼루션(LTE)은 도심의 높은 건물마다 큰 기지국을 두고 전봇대 등에 소형 장비를 설치해 통신을 지원하고 있다. 화웨이는 5G 시대에는 가로등에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소형 5G 통신기기에 방범카메라까지 갖춘 ‘튜브스타’가 전봇대를 대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장비들이 사물인터넷(IoT)과 자율주행차량 등 미래산업을 움직일 핏줄이 된다. 화웨이 관계자는 “세상 모든 곳에서 집 안까지 5G 통신을 연결해줄 솔루션을 이미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화웨이는 5G 통신기기 분야에서 세계 시장이 거스를 수 없는 경쟁력을 보유해 표준을 꿰차려 하고 있다. 물론 삼성전자(005930)도 화웨이 못지않은 5G 통신장비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국제표준이 되기는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엄치성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협력실장은 “표준은 기술력만 높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안전성과 성능 등이 두루 입증되고 기록으로 증명돼야 한다”고 평가했다.
중국이 첨단산업에서 “세계 최고가 되겠다”며 굴기를 공표한 것은 지난 2015년 5월. ‘7대 전략적 진흥계획’을 추진하던 중국은 산업정책을 ‘제조 2025’라는 고속열차에 올렸다. 차세대 정보기술, 첨단로봇, 신재생에너지자동차, 신소재 등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한다는 게 골자다. 만물 연결(All things connected) 시대에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제조업과 시너지를 낼 ‘인터넷 플러스’ 정책도 밝혔다. 오는 2025년에 제3그룹(한국·영국·프랑스) 앞에 서고 2035년 제2그룹(독일·일본)의 선두를 선점해 2045년에는 세계 최강 산업 대국인 미국 위에 오르는 30년 대계다.
무서운 점은 중국 정부와 민간 거대 기업이 함께 세계 1위를 꿈꾸며 사생결단의 투지로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취재단이 찾은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업체 알리바바의 베이징 연구개발(R&D)센터는 주변이 암흑에 잠길 때도 홀로 불을 밝히고 있었다. 오후10시가 넘어서 퇴근하던 연구원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는 어렵다(Nice is so hard)”고 설명했다. 알리바바가 꼽는 최대의 경쟁자는 미국의 아마존. 중국 정부는 지난해 8월 2030년 AI 산업 시장 규모를 1조위안(약 170조원) 규모로 확대하는 계획을 내놓았다. 지난해 10월 알리바바는 AI 등 첨단산업에서 미국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3년간 1,000억위안(약 17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1위가 된 화웨이의 연구개발 인력은 전체의 44%인 8만명, 지난해에는 매출의 15%(약 15조원)를 R&D에 쏟아부었다. 매출의 7%를 R&D에 투자한 삼성전자의 두 배다. 중국은 계획경제지만 기업은 냉혹한 자본주의로 움직인다. 야전침대를 두고 일하는 문화가 있던 화웨이가 대표적이다. 성과 없는 직원 5%가 매년 잘려나간다. 조철 산업연구원 중국연구부장은 “우리 국민에게는 아직도 중국은 짝퉁이나 만드는 국가라는 인식이 있다”며 “미래산업은 중국이 우리보다 앞선 분야가 많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국내 협회 12곳에 한국(수준 100)과 중국(108), 미국(130), 일본(117)의 수준을 물은 결과 한국이 꼴찌였다. 특히 협회들은 5년 후에는 중국과 일본의 수준(113)이 같아지고 한국은 12개 분야 모두 중국에 뒤처질 것이라고 답했다.
산업굴기의 종착점은 중국을 모든 것의 중심에 두는 ‘중화’(中華)다. 서구가 아닌 중국 표준을 만들겠다는 것. 자율주행 분야에서는 벌써 이 같은 흐름이 시작됐다. 세계 최대 규모인 중국의 자율차 시장은 구글 웨이모나 우버 같은 글로벌 업체가 아닌 바이두와 중국판 우버인 디디추싱 등이 중심이다. 바이두가 지난해 구글의 운영체계와 비슷한 오픈소스 플랫폼인 ‘아폴로 프로젝트’를 내놓자 다임러와 보쉬·포드·현대자동차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참여를 선언했다. 바이두와 함께 중국 시장에 맞는 기술을 차량에 담을 것이다. 심지어 4차 산업혁명의 혈맥인 통신장비 부분은 차이나 스탠더드가 눈앞에 다가왔다.
미국의 견제도 심해지고 있다. 올해 중국 2위의 통신장비 업체 ZTE에 대해 북한·이란과 거래했다며 거래금지 명령을 내려 도산 위기로 밀어붙인 배경은 ‘차이나 스탠더드’에 대한 경고라는 해석도 있다. 중국이 선을 넘을 경우 다음 타깃은 화웨이가 될 가능성이 짙다. 이희옥 성균관대 중국연구소장 교수는 “거대시장을 발판으로 표준을 만들고 나면 세계에서 미국 등과 누가 더 우수한지 표준 경쟁을 하자는 것”이라며 “미국이 벌이는 무역전쟁 이면에는 각종 규제로 글로벌 기업들을 몰아낸 후 자국 기업을 육성해 도전하는 중국을 눌러놓겠다는 의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선전·베이징=구경우·서민준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