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만 남은 전기의자,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다

박원주 작가의 개인전 '안드로이드는 전기의자를 꿈꾸는가!'
성북동 <드로잉스페이스 살구>에서 18일까지 열려

‘드로잉스페이스 살구’에 전시된 박원주 작가의 신작 ‘안드로이드는 전기의자를 꿈꾸는가!’(사진 위), 박원주 작가가 A4크기로 전기의자를 만들 수 있는 모형 제작용 매뉴얼과 이를 바탕으로 제작한 작품 ‘고독공포를 완화하는 의자’가 실린 잡지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종이로 만든 ‘전기의자’ 연작을 발표하고 있는 박원주(사진) 작가가 성북동 드로잉 스페이스 살구에서 ‘안드로이드는 전기의자를 꿈꾸는가!’라는 제목을 걸고 오는 18일까지 개인전을 열고 있다.


2004년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종이로 만든 전기의자를 만들면서 종이 조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박 작가가 이번에는 종이로 된 전기의자의 선만 남겨 줄로 내 걸었다. 이번 전시는 서울문화재단 후원으로 열렸다. 그가 만드는 작품은 세계 최초로 전기 사형을 집행했던 뉴욕 싱싱 교도소(Sing Sing Prison)에서 실제로 사형수를 앉혔던 전기의자에서 모티브를 따 왔으며, 그 전기의자는 에디슨이 제작했다. 박 작가는 에디슨이 제작한 전기의자의 설계도를 얻기 위해 싱싱 교도소의 역사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뉴욕 오시닝 히스토리컬 센터(Ossining Historical Society Museum)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는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만들 수 있는 종이 전기의자 제작 매뉴얼(사진 아래)을 만들기도 했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그동안 만든 전기의자에서 바깥 선만 색지로 따내서 허공에 걸어놓았다. 종이로 된 전기의자의 변주가 시작된 것이다. 작가가 전기의자 작업을 한다는 소식을 미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이번 작품 첫 인상은 새롭게 다가올 수 있다. 이를테면 도시의 빌딩의 외관이 떠오르기도 하고, 미로 같은 알 수 없는 공간이 머리를 스쳐지나기도 한다. 박 작가는 “죽음을 떠올리는 전기의자에는 삶의 의미가 담겨있다”면서 “돌이나 유리 등 전통적인 재료에 집착하지 않는 현대미술로 일종의 개념조각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설명을 듣고 나서 작품을 다시 보면 고통에 울부짖는 사형수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전시 공간이 교도소의 한 공간으로 바뀐 듯 섬뜩하다. 작품제목은 미국의 SF소설가 필립 K. 딕의 1968년작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라는 소설에서 착안한 것이다.

박 작가는 “소설에서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분하는 데 감정이입, 측은지심 등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면서 “이번 전시는 인간으로서의 삶과 죽음은 무엇인가를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원주 작가는 성신여대 조형대학원 미술학과를 마치고 1992년 청년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서울, 영국, 런던,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덴마크 워더루프 등에서 15회 이상 개인전을 열었다. 2009년 김종영미술관 오늘의 작가로 선정됐고 필척 글라스 스쿨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 국내외 여러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전시는 18일까지이며 월요일은 휴관이다. 전시 시간은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열린다. /사진·글=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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