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설국열차’
#때는 2031년.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대기 성층권에 인공냉각제 ‘CW-7’을 살포한 인류는 부작용으로 빙하기를 맞게 되고 아프리카부터 극지방의 툰드라까지 매년 43만8,000㎞를 달리는 열차 안에서만 생존하게 된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새하얀 풍경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단 20초만 노출돼도 몸은 질소 냉각된 사물처럼 뻣뻣해져 약간의 충격에도 산산조각이 날 정도다. 대기 온도를 이전처럼 낮출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 열차 안은 인류가 맞이할 또 다른 세상, 고립된 지구, 계급사회다.
봉준호 감독의 2013년 작 ‘설국열차’에서 그린 지구의 모습은 이렇듯 참담하다. 인류는 기후변화를 자초했다는 점에서 지구 생태계의 가장 위험한 천적으로 비판받아 마땅하고, 봉 감독은 ‘설국열차’에서 이 점에 주목했다.
영화 ‘투모로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는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로 인류가 자멸의 위기에 처하는 플롯이 재난영화의 단골소재로 등장한 지 이미 오래다. 1990년대 재난영화가 △소행성 충돌(아마겟돈·딥임팩트 등) △화산 폭발(단테스피크·볼케이노 등) △태풍(퍼펙트 스톰 등) 등에 맞서 사투를 벌이는 주인공들의 모험에 초점을 맞췄다면 2000년대 재난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투모로우’나 ‘2012’부터는 이상기후로 빚어진 자연재해가 지구 종말을 앞당긴다는 설정이 주요 플롯으로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최근에는 소재도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설국열차’ ‘지오스톰’ 등의 영화에서는 인류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기후를 조작할수록 폭설과 혹한, 쓰나미, 용암 분출, 폭염 등의 기상이변이 속출하게 된다. 또 올해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되며 화제를 모은 ‘인 더 더스트’는 심각한 미세먼지로 파리 인구의 60% 이상이 사망한 가운데 딸을 살리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 ‘인 더 더스트’ 포스터
이와 관련해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자연재해처럼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배경으로 주인공들의 분투를 그리는 영화는 할리우드의 전통적인 소재였지만 최근에는 이상기후에 좀 더 초점을 맞춘 다양한 화법의 작품들이 개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극지방의 기후변화나 아마존 산림 붕괴처럼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주로 다뤄지던 소재들이 대중의 관심을 등에 업고 상업영화에서도 빈번하게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