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경제] 농협 비과세 폐지 막겠다는데…강남에 몰려드는 협동조합 잃어버린 유대

이개호 장관 "비과세 폐지 철폐"
강남 등 준조합원 예금 더 많아
가계대출 부추기고 부의 이전도
연대의식 등 기본으로 돌아가야


지난 10일 새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취임했습니다. 주인공은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입니다. 이 장관은 농정 전문가입니다. 국회 인사청문회도 손쉽게 통과했습니다.

그런 그가 밝힌 정책 가운데 하나가 농업협동조합과 수산업협동조합 준조합원에 대한 비과세 폐지 철폐입니다. 그는 지난 9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실시한 청문회에서 “준조합원의 비과세가 폐지되면 농협 운영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다”며 기획재정부가 추진 중인 상호금융 예탁금 준조합원 비과세 폐지를 막아내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신임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10일 오후 취임 후 첫 일정으로 경남 거창군 거창읍 한 사과 농가를 찾아 폭염 피해를 확인하고 있다. /거창=연합뉴스

기재부, “내년부터 준조합원 세금 내라”

상호금융 비과세가 뭐기에 이렇게 떠들썩할까요. 현재 농협과 수협(농협은행·수협은행과 다름), 산림조합의 단위조합에 돈을 맡기면 예·적금은 3,000만원까지 소득세(14%)를 면제 받습니다. ‘강서농협’처럼 특정 지역명이 붙거나 감귤농협이나 사과원예농협처럼 재배 품목이 들어가는 곳이 단위 조합입니다.

그런데 기재부가 올해 세법개정안을 내놓으면서 준조합원은 내년에 5%, 2020년 9%의 분리과세를 적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비과세가 과세로 바뀌는 겁니다.

농협·수협이니까 우리와 관계 없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재부의 안을 다시 보죠. 우선 기재부는 조합원이 아닌 준조합원의 혜택부터 없애겠다고 합니다. 현재 농협과 수협의 정식 조합원이 되려면 농어민이어야 합니다. 준조합원은 농협이나 수협에 사는 일반 주민도 가능합니다. 출자금(1만원 안팎)만 내면 준조합원으로 등록해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금리 시대에 비과세만큼 달콤한 게 있을까요. 기재부는 기초생활수급자와 독립유공자, 만 64세 이상 같은 이들만 가입할 수 있는 비과세종합저축을 빼면 상호금융 비과세 혜택이 가장 좋다고 설명합니다. 당장 내년에만 1,000만명 정도의 비과세 혜택이 사라질 전망이니 일반인들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조합 등 예탁금 이자소득 비과세 규모 (단위: 억원)

시기 규모
2017 5,948
2018 6,369
자료: 기획재정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기형적 구조

문제는 이 같은 비과세 혜택이 매우 기형적이라는 점입니다. 조합원에게 비과세 혜택을 주는 건 좋습니다. 농어민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니까요. 당초 취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큽니다. 박주현 바른미래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농협 전체 조합원 1,923만명 가운데 정조합원은 12%인데 반해 준조합원은 88%에 달합니다. 농협의 지난해 말 기준 총 비과세 예금 52조3,898억원 중 준조합원이 예치한 금액은 무려 42조4,744억원에 달합니다.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상호금융권의 출자금과 예탁금에 비과세를 해준 금액은 5,948억원입니다. 올해는 6,369억원으로 추정됩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입니다.

서울 강남 신사동에 위치한 영동농협 압구정로데오지점. /영동농협 홈페이지

강남에도 농협이? 그들은 강남으로 몰려들까


강남에 영동농협이라고 있습니다. 강남에 왠 농협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습니다. 1972년 세워졌으니까 그때만 해도 강남이 개발되기 전입니다. 서울 강남구라는 게 있기도 전입니다. 강남구는 1975년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때 강남은 논밭이었으니까 농협이 있을 만합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2018년 강남에 농사지을 땅이 있을까요? 아시는 대로입니다. 지금 영동농협은 강남 지역에서 농사를 짓거나 농민 중에 강남에 사는 사람이 조합원입니다. 2016년 말 기준으로 조합원은 682명인데 준조합원은 4만8,452명입니다. 조합원 비중이 1.4%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98.6%는 농업과 관계 없는 그냥 강남에 사는 분들입니다. 지역으로 구분하지 않더라도 예금을 할 수 있는 분들은 대출을 써야만 하는 서민들보다 나은 분들입니다.

영동농협의 지점을 볼까요. 양재동의 도곡지점, 개포2동에 개포지점, 논현동에 강남지점, 대치동에 대치지점, 신사동에 압구정로데오지점 등 강남 곳곳에 점포망을 갖고 있습니다. 주변의 강남 주민들은 이곳에서 편하게 준조합원 비과세 혜택을 누립니다. 뭔가 잘못돼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우리 농산물 특판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돈버는 강남 묻지마 진출

사실 단위조합은 농어민의 농산물 판로를 책임져 주는 곳입니다. 금융사업은 서비스 차원에서 하는 것이죠. 그런데 강남의 조합들은 이게 반대로 돼 있습니다. 영동농협을 보시죠. 2016년 신용사업(금융) 수익은 590억원인데 반해 경제사업(농산물 판매 등)은 111억원입니다. 5배가 넘는 이익이 금융에서 나옵니다.

그러다 보니 너도나도 강남으로 뛰어듭니다. 지난 3월 대형기선저인망수협은 서울 강남에 압구정지점을 냈습니다. 대형기선 수협이 왜 강남에 지점을 내야 하는지는 이해가 어렵습니다만 이 같은 구조를 보면 대강 짐작이 갑니다. 대표적으로 영동농협을 들었을 뿐 송파농협 등 서울 주요 지역의 농협은 사실상 금융이 더 중요합니다.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죠. 이개호 농식품부 장관이 청문회에서 이대로 세제개편안이 통과되면 각 단위 농협별로 연간 2억7,000만원 정도의 수익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서울 시내 한 은행창구. /연합뉴스

가계부채의 종범 상호금융

사실 중산층 이상, 고소득층도 상호금융권의 비과세 매력에 끌려 많이 예금을 해왔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농협 등 상호금융권 예금은 170조2,552억원에서 327조2,790억원으로 무려 92.2%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은행은 61% 늘어났죠. 저축은행은 거꾸로 감소했습니다. 비과세 혜택에 농협에 몰려든 자금은 결국 가계대출로 이어졌습니다.

금융당국이 줄기차게 상호금융권 대출을 잡으려고 노력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금융사 입장에서는 예금을 받으면 이를 대출해야 합니다. 예금이자를 주려면 대출을 해서 돈을 빌려줘야 하기 때문이죠. 예금이 물밀듯이 들어오니 상호금융은 대출을 늘렸습니다. 그 결과 농협은 가계부채 증가에 일조했습니다. 주범은 은행이지만 상호금융도 기여한 셈이죠. 실제 지난해 2월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가계부채 증가세를 주도한 농협과 수협 등 70곳을 특별점검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그 전부터 상호금융의 비과세가 가계부채 증가에 영향을 준다는 우려는 많았습니다.

국회 통과 ‘난망’…협동조합의 목적 되새겨야

이런 상황이지만 농협과 수협의 준조합원 비과세 혜택 폐지는 어려울 전망입니다. 당장 정부 부처인 농식품부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정치권도 마찬가지입니다. 되레 지금의 비과세 혜택을 연장하자는 법안이 여야를 막론하고 제출돼 있는 상태입니다. 기재부의 안은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처럼 기형적인 구조를 계속 놔둘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협동조합은 사실 조합원을 위한 조직입니다. 농협은 농민을, 수협은 어민을 위한 것이죠.

금융사업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은 협동조합의 기본 정신에 맞지 않습니다. 돈을 벌더라도 최소한으로 하며 이익이 남더라도 조합원들에게 모두 돌려주는 게 협동조합입니다. 지금의 구조는 자산가에게 예금을 받아 서민에게 돈을 빌려준 뒤 그에 대한 이익은 자산가와 농민들이 나눠 갖는 형태입니다. 부의 이전이 되는 꼴이죠. 준조합원이나 비조합원을 대상으로 대출장사를 하는 게 협동조합의 목적은 아닙니다. 지역 유대는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농협의 예대금리 차이는 3%포인트 안팎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속에서도 계속 이 수준을 오락가락합니다. 농식품부 장관이 비과세 예금을 못 받으면 수익이 2억7,000만원이나 줄어들어 경영에 문제가 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금융보다 판매사업에 주력하는 농협이 보고 싶습니다. 비과세 혜택, 이제는 고민할 때가 됐습니다.
/세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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