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약세를 이어가자 수익률이 악화된 연기금이 주식투자 비중을 축소하며 코스피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연기금을 중심으로 한 기관의 매도 공세가 이어짐에 따라 위축된 개인의 투자심리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외국인이 지난달부터 순매수로 돌아섰지만 미·중 무역전쟁의 불씨가 여전해 완벽한 태세 전환으로 보기도 이른 상황이다.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기금은 이달 들어 10일까지 8거래일 동안 유가증권 시장에서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순매도를 기록하며 4,364억원을 팔아치우고 있다. 연기금의 ‘팔자’ 기조는 지난달부터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에도 연기금은 8,134억원의 매도 우위를 기록했다. 지난달부터 이달까지 30거래일 중에 4거래일(7월6·10·11·30일)을 제외하면 연기금의 매도 공세는 계속됐다. 연기금이 주도하자 기관 전체로도 7월(-3,675억원)과 8월(-8,339억원) 순매도가 이어지고 있다.
상반기 주식시장에서 재미를 보지 못한 연기금이 하반기 전망도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비중 축소에 나서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연금이 5월까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것을 비롯해 사학연금(-6.61%), 공무원연금(-5.6%), 교직원공제회(-7.0%) 등의 상반기 국내 주식 투자 수익률은 모조리 마이너스였다. 지난해만 해도 증시 호황의 영향으로 두자릿수 수익률을 기록한 것과는 상반된 결과다. 주식 비중이 높아 주가 상승기에는 재미를 봤지만 증시가 약세를 이어가며 손실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이자 자연스레 주식보다는 채권 등의 자산을 늘리는 것으로 보인다. 하인환 SK증권 연구원은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주식 비중을 축소하는 과정이 아닐까 걱정된다”고 평가했다. SK증권에 따르면 연기금과 보험사는 지난달부터 국채 10년물을 순매수하며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연기금의 영향으로 수급의 한 축인 기관의 매도 공세가 강화됨에 따라 순매수로 전환한 외국인의 영향력도 코스피 지수를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이다. 올 들어 외국인은 월별로 지난 1월 1조9,754억원을 사들인 이후 2월부터 6월까지 5개월 연속으로 매도 포지션을 유지했다가 7월부터 매수 우위로 돌아섰다. 지난달 3,735억원을 순매수한 외국인은 8월에도 10일까지 3,521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하고 있다. 외국인이 6개월 만에 순매수로 돌아섰지만 그렇다고 본격적인 ‘바이코리아’ 분위기도 아니다. 달러화 강세가 주춤하고 코스피 지수가 주가순자산배수(PBR) 1배 수준으로 저점에 이르렀다는 평가에 따라 기술적인 접근을 했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중국의 관세 충돌이 재개되자 외국인은 9일(-2,238억원)과 10일(-1,089억원) 이틀간 3,327억원을 매도하며 다시 숨고르기에 들어가기도 했다.
연기금과 외국인의 상반된 매매패턴은 개별 섹터에서도 확인된다. 연기금은 국내 대표 업종인 정보기술(IT) 업종에서 7월과 8월 각각 3,121억원, 2,418억원을 팔아치운 반면 외국인은 5,247억원, 2,167억원을 순매수했다. 이달 들어 외국인은 9일까지 IT 대장주 삼성전자(005930)를 개별 종목으로는 두번째로 많은 1,041억원어치를 사들였으나 연기금은 그보다 많은 1,200억원을 내다 팔았다.
어느 한 쪽도 증시를 이끌지 못하면서 코스피 지수는 2,250~2,300 사이를 오가고 있다. 이달 들어 2,300 돌파를 수 차례 시도했지만 안착하지 못한 채 다시 2,200선으로 내려오기를 반복하는 양상이다. 개인 역시 기관과 외국인의 대립 양상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투자증권은 코스피가 월간 기준으로 최근 3개월 연속 하락했다며 과거 경험상 8월에도 하락세로 마감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될 경우 연말까지 약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김광수기자 brigh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