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행하는 국회]카풀 등 성장 싹 '싹둑'...이념 덫에 빠져 붉은깃발법 쏟아내

이슈 하나 터지면 비슷한 법안 우후죽순 발의
대기업 겨냥 표적입법 등 여야 '맞불 경쟁'까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혁신 토론회를 주재하면서 혁신성장과 규제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인터넷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완화 등 규제개혁 속도가 지지부진한 것에 대해 답답하다는 심정을 토로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답답하다’는 심정을 토로하며 규제개혁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지만 국회는 딴 나라 얘기인 듯 먼 산 불구경을 하고 있다. 규제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대거 양산하고 있다. 미국·중국·일본 등 글로벌 경제주체들은 ‘규제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혁신성장에 불을 붙이고 있지만 우리 국회는 손을 놓고 있다. 문 대통령이 뽑겠다는 규제를 계속해서 생산하고 있는 곳은 국회다. ‘이념의 덫’에 빠져 규제 맞불 경쟁을 벌이고 있고 대기업을 겨냥한 ‘표적 입법’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는 사이 카풀·숙박공유 시스템 등 4차 산업혁명에 기반한 혁신성장 산업은 정작 입법 미비에 발목이 잡혀 사장되고 있다. 세계가 규제와의 전쟁에 나설 때 한국만 나 홀로 역주행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줄이지는 못할망정 규제 늘리는 국회=20대 국회는 철거가 시작된 규제 공화국에 주춧돌을 쌓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과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20대 국회 들어 발의된 의원 법안은 총 1만3,590건으로 이 중 18%인 2,386건이 규제를 신설·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같은 성격의 법안이 19대 때는 8%(1만6,729건 중 1,335건)였던 것과 대조적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지나친 규제는 시민사회의 자율성이나 창의성까지 옥죌 가능성이 있어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며 “국회가 많은 규제와 이에 따른 번거로운 절차를 줄이는 데 앞장서야 하는데 (이 같은 노력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정 이슈에 대한 규제와 이에 대한 맞불 규제로 정쟁하는 정치권의 구태도 이 같은 현실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큰 정부 기조와 맞물려 20대 국회 들어 규제 입법이 많아진 게 사실”이라며 “규제 완화를 위해서는 동반자이자 견제세력인 정당들의 존재감이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여든, 야든 보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혁신성장 싹 되레 잘라=각종 규제가 사회·경제·문화적 변화를 발 빠르게 반영하지 못하면서 정부가 부르짖은 혁신성장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예컨대 출퇴근 카풀(승차공유) 스타트업들은 ‘한국판 우버’를 꿈꿨지만 규제 탓에 세가 크게 위축됐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은 ‘자가용 자동차를 유상운송 및 임대 알선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자가용 자동차 운행 억제와 교통혼잡 완화 취지로 제정된 예외 규정으로 출퇴근 시간에 한해 카풀 서비스를 허용해왔다. 그런데 황주홍 민주평화당 의원은 지난해 말 기존 출퇴근 시간에 한해 허용하던 카풀도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황 의원은 그 이유로 ‘택시사업의 불황 해소’를 들었다. 에어비앤비로 대표되는 온라인 공유민박 역시 관광진흥법 규제 탓에 의도치 않게 불법 영업을 벌이고 있다. 현행법상 관광숙박업으로 등록하지 않고 자신의 주거공간을 유료로 빌려주는 것은 불법이다. 공유민박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어 불법 영업을 하거나 ‘외국인 관광 도시민박업’으로 운영하면서 내국인을 받는 식의 ‘우회 영업’이 이뤄지는 것이다. 공유민박업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이완영·전희경 대표발의 2건) 정작 이 같은 ‘규제 철폐’ 법안 처리는 깜깜무소식이다. ‘한국판 우버’ ‘한국판 에어비앤비’를 키울 토양은 곳곳이 바위투성이인 셈이다.

◇이슈 편승한 규제 법안 남발=이슈가 하나 터지면 비슷한 법안들이 우후죽순 발의되는 한철 입법도 불필요한 규제 양산에 한몫한다. 국회의원들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법안을 발의하기보다는 당장의 이목을 끄는 화제성 법안을 발표하는 데 주안점을 둔 탓이다.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했던 봄철에는 미세먼지 저감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미세먼지 관련 법안이 40건 넘게 발의됐고 경주와 포항지진이 발생한 후에는 경쟁이라도 하듯 관련 건축법 개정안이 수십 건 나온 바 있다. 최근에는 BMW 화재사태가 논란의 중심이 되자 이를 겨냥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법제화하는 개정안들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일단 관련 입법을 우르르 내놓고 보는 쉬운 입법에 매몰된 것이다. 서울경제 펠로(자문단)인 김용철 부산대 교수는 “국회가 규제를 풀고 경제를 활성화하기보다는 자기들이 좇는 정치적인 가치를 더 중시해 이런 상황이 심화되는 것”이라며 “규제를 풀어 경제가 활성화돼봤자 정부 좋은 일이라는 인식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힘을 써도 표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판단에 규제 완화보다는 당장의 이슈에 편승하는 법안에만 치우치게 된다는 얘기다./송주희·양지윤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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