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외교장관과 비서실장 공관서 만난 김기춘, '징용재판 연기' 요구 정황

檢 "필요하다면 朴 전 대통령 조사"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양승태 사법부 시절 대법관을 따로 불러 만나는 등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전범 기업 상대 소송에 개입한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다. 당시 김 전 실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통하던 터라 앞으로 수사가 박 전 대통령으로 향할지 주목된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봉수 부장검사)는 김 전 실장이 지난 2013년 말 삼청동 비서실장 공관에 당시 현직 대법관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불러 재판 진행 상황을 논의한 관련자 진술과 회동 기록 등을 확보했다. 김 전 실장과 만난 대법관은 차한성 법원행정처장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은 앞서 검찰이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대법원은 2012년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전범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해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으나 2013년 해당 기업들의 재상고로 사건이 대법원에 다시 접수된 상태였다. 대법원은 5년간 결론을 미루다가 최근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검찰은 김 전 실장이 당시 회동에서 소송의 최종 결론을 최대한 미루거나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해달라고 요구했고 이를 대법원이 받아들이면서 재판이 늦춰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또 대법원이 이를 들어주는 대가로 유엔 등 법관의 해외 파견에 청와대와 외교부의 협조를 얻어낸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날 김 전 실장을 피의자 신문으로 불러 대법원에 해당 소송을 늦춰달라고 요구하고 그 반대급부로 법관의 해외 파견을 지원했는지 등을 추궁했다. 13일에는 회동에 배석한 윤 전 장관 등 외교부 관계자들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검찰 관계자는 “민사 소송은 개인 사이의 송사라 정부가 개입하면 안 되는데다 현직 법관이 사건 내용을 외부에 유출했다는 점에서 사안이 중대하다”며 “필요하다면 박 전 대통령까지 조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현덕기자 alwa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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