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
성장과 고용의 주역은 벤처다. 대기업은 성장에는 기여하나 고용 효과는 부정적이다. 소상공인은 고용에는 기여하나 성장 기여도는 미미하다. 결국 성장과 고용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유일한 대안은 벤처 창업과 성장을 통한 국가 혁신에 달려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현 정부에서 야심 차게 중소벤처기업부를 출범시킨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을 이끌 벤처의 스타트업과 스케일업 활성화 방법론에 대한 국가 전략은 아직도 미비하다. 한국은 미국 실리콘밸리, 이스라엘, 핀란드를 거쳐 이제 중국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그런데 혁신은 국가마다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실리콘밸리는 전 세계는 물론 미국 내에서도 이식 성공사례가 없다. 이스라엘과 핀란드와 중국도 마찬가지다. 혁신의 본질에 입각한 국가별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는 것이 핵심 시사점이다.
한국의 벤처생태계 전략은 다른 국가 벤치마킹 이전에 한국의 벤처 발전사를 벤치마킹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이원재 요즈마그룹 한국지사장은 지난 2013년 언론 인터뷰에서 “믿기 어렵겠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이스라엘에서는 한국의 벤처 환경을 부러워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1만개가 넘는 벤처가 쏟아져 나왔다”고 말한 바 있다. 2000년 당시 한국의 벤처 창업은 연간 3,000개가 넘고 투자액은 3조원에 달했으며 코스닥 상장기업은 200개 규모였고 코스닥은 나스닥에 이은 세계 2위의 첨단 주식시장으로 등극했다. 세계 최초의 벤처기업특별법과 미국 외 최초의 코스닥을 발판으로 정부의 직접지원 없이 한국은 세계 최고의 벤처생태계를 구축해 이스라엘과 중국 등이 한국을 배우러 몰려왔다. 그런데 왜 지금 한국은 혁신적 일자리 창출이 미미한지 원인 분석을 통해 벤처 전략을 재정립해보자.
2000년 말 전 세계를 강타한 정보기술(IT) 버블 붕괴로 미국 나스닥과 유럽 노이에 등 첨단 주식시장이 폭락했다. 코스닥도 동일한 형태로 추락했다. 전 세계적인 현상을 한국 정부는 국내 문제로 오해해 ‘코스닥 통합, 벤처인증 전환, 주식옵션 보수화, 기술거래소 통폐합’이라는 4대 벤처 건전화 정책을 밀어붙였다. 코스닥 통합 이후 상장기간은 8년에서 14년으로 늘어나고 상장기업 수는 5분의1 수준으로 축소돼 벤처 투자의 회수시장 역할이 희석됐다. 벤처 인증이 기술인증에서 대출보증으로 전환되면서 고위험·고성장의 벤처에서 저위험·저성장의 벤처로 변질됐다. 주식옵션 회계기준 보수화로 우수인력의 벤처 유입통로가 차단됐다. 기술거래소 통폐합으로 중간회수 시장인 인수합병(M&A) 시장의 뿌리가 약화됐다. 그 결과 10년의 벤처 빙하기가 도래해 벤처 선진국 대한민국은 이제 벤처 후발국으로 전락했다.
2013년부터 시작된 벤처 르네상스 정책으로 부분적 지표는 개선됐다. 벤처투자는 2000년 수준을, 엔젤 투자는 절반 수준을 회복했다. 그러나 2000년의 벤처생태계는 회수시장 중심의 민간 생태계인데 현재는 정부 주도의 공급형 벤처생태계로 변모했다. 벤처캐피털은 코스닥시장이 활성화되면 스스로 투자를 확대한다. 엔젤 투자자들은 M&A 시장이 커지면 알아서 투자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공공투자자금 공급에 주력한 결과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과다한 공공 벤처투자 비율을 보이고 있다. 맥킨지도 동일한 진단을 한 바 있다. 한국의 벤처생태계는 공급 위주에서 순환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사전 연대보증에서 사후 징벌적 배상으로 과다한 창업 지원을 과소한 재도전 인프라로 전환해야 한다.
창조경제연구회(KCERN)가 주창해온 창업자 연대보증 해소와 기업가정신 의무교육 등 새로운 정책들은 수용됐으나 벤처 건전화 정책을 원상 복귀하는 결단은 아직도 미진하다. 우리의 성공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현명한 정책 방향이다. 여기에 개인정보와 공공정보 그리고 클라우드 규제라는 4차 산업혁명 고속도로 개통이 더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