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주최한 긴급 집회에 주최 측 추산 오후6시 기준 약 7,000명의 시민이 모여 있다. 이들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무죄 판결을 비판하며 재판부와 사법부를 규탄했다./오지현기자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혐의에 내려진 무죄 판결로 분노한 여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18일 ‘미투(Me Too)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주최한 긴급집회에는 오후6시 기준 약 7,000명에 달하는 시민이 참가해 서울 서대문역사박물관 앞 도로를 채웠다. 주최 측은 “그동안 한국사회의 수많은 여성들은 경찰·검찰·법원 등 국가권력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되어왔다”면서 “더 이상 이런 사회에서 살지 못하겠다는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공권력을 규탄하게 된 것”이라고 주최 의도를 밝혔다.
안희정 사건의 피해자인 전 충남도지사 정무비서 김지은씨는 대리인인 정혜선 변호사를 통해 재판부를 정면 비판하는 한편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에게 감사의 메세지를 전했다. 김씨는 “저는 그날(범행 당시) 안희정에게 물리적, 성적 폭력을 당한 것이고 제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거절 의사를 분명히 표시했다”고 강조하며 “최소한의 회피와 저항이 없었다”는 재판부의 선고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김씨는 그러면서 “저는 검찰의 집요한 수사와 법원의 이상한 질문에도 성실하고 일관되게 대답했으며 증거를 제출했다”며 “판사님은 왜 가해자가 페이스북에 쓴 글, 가해자가 김지은에게 한 말, 가해자가 검찰 출두 직후 파기한 휴대폰에 대해서는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냐”고 되물었다. 이어 “죽어야 제대로 된 ‘미투’로 인정받는다면 지금 죽어야 할까 생각하기까지 했다”고 언급하며 “강한 안희정 측의 힘 앞에 대적할 수 있는 건 여러분의 관심뿐”이라며 시민들의 관심과 도움을 호소했다.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못살겠다 박살내자’라는 제목으로 열린 긴급집회는 자유발언과 광화문, 경복궁 일대로의 행진, 현수막 찢기 등 퍼포먼스로 구성됐다. 발언에 나선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가는 “일터에서 최초가 된 여성은 반드시 일을 남자보다 곱절 잘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면서 “성폭력 당한 다음날 피해자가 업무를 수행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병구 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의 입이었고, 이 판결은 ‘재판농단’”이라면서 “판결문 전문을 읽고 난 다음 저는 재판부가 가해자 편이었을 뿐 아니라 구조적 폭력 그 자체라는 걸 알게 됐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고은 시인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했던 최영미 시인도 집회를 찾아 피해자에 대한 연대를 표시했다.
18일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주최한 긴급 집회에 주최 측 추산 오후6시 기준 약 7,000명의 시민이 모여 있다. 이들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무죄 판결을 비판하며 재판부와 사법부를 규탄했다./오지현기자
집회를 찾은 시민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했다. 유모차를 끌고 가족단위로 집회를 찾은 이들도 눈에 띄었다. 집회에 함께 나왔다는 20대 연인은 “많은 성폭력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는 시위가 궁금하기도 하고, 연대한다는 의미에서 나왔는데 생각보다 참가자가 많아 놀랐고 동조하는 분들이 많다는 걸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들은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같은 구호를 함께 외치며 광화문 일대를 행진했다.
한편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무죄 판결의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는 모양새다. 시민행동 측은 안희정 전 지사가 지난 14일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후 “성평등한 사회로 전환을 기대했던 수많은 시민들이 좌절했다”면서 오는 25일로 예정됐던 집회를 앞당겨 개최했다. 판결 당일에는 서울서부지법 앞에 ‘긴급행동’ 명목으로 50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안희정이 무죄라면 사법부는 유죄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사법부를 규탄하기도 했다.
/오지현기자 ohj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