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냈소?" 800년만에 만난 남북 은행나무

北 큰 홍수로 수나무 떠내려와
분단 후 중단됐던 부부나무 의례
이산가족 상봉맞아 칠석에 재개
北 암나무 사진·그림으로 재회
"남북 공동행사 진행도 모색 중"

강화 볼음도 은행나무 /사진제공=문화재청

약 800년 전, 큰 홍수로 생이별한 은행나무 부부가 있었다. 황해도 연안군 호남리에 있던 부부 은행나무 중 수나무는 뿌리째 뽑혀 맞은편 섬인 강화도 서도면 볼음도까지 떠내려갔다. 볼음도 주민들은 그 나무를 건져 올려 섬에 심었고, 수백 년 동안 볼음도와 연안군 주민들은 정월 그믐날이면 서로 연락해 각각 은행나무 앞에서 제(祭)를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남북 분단으로 인해 행사의 명맥이 끊기면서 부부 은행나무는 더 이상 서로의 소식을 알지 못하게 됐다.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가운데 분단의 아픔을 겪은 은행나무 부부도 만났다. 분단 이후 중단된 인천 강화도 서도면 볼음도 은행나무 민속행사가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음력 7월 7일)인 17일 오전에 다시 열렸다. 강화 볼음도 은행나무의 한을 풀어주는 행사인 만큼 은행나무 옆에 커다란 북한 암나무 사진을 걸어 800년 만에 부부 나무가 재회하도록 했다. 오랜 시간 마을 주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 은행나무는 가슴높이 줄기 둘레 9m, 밑동 둘레 9.8m, 키 24m의 거대한 크기로 천연기념물 제304호로 지정됐다. 황해도 연안 호남중학교 뒷마당에 있다는 암나무 역시 북한 천연기념물 제165호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이 17일 오전 강화군 서도면 볼음리에서 강화군, 한국문화재재단, (사) 섬연구소와 공동으로 개최한 천연기념물 제304호 강화 볼음도 은행나무 민속행사에서 한국의집 예술단원들이 ‘태평성대’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문화재청

문화재청, 강화군, 한국문화재재단, 섬 연구소가 주최한 이번 민속행사는 많은 주민을 초청해 마을 잔치처럼 치렀다. 이날 김종진 문화재청장은 “부부 나무는 생사를 모른 채 오랜 세월을 견뎌야 했다”며 “오늘은 오랫동안 중단됐던 부부 나무의 의례를 남쪽에서 복원하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전했다. 사회를 맡은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 박애리 씨는 “은행나무는 암수가 떨어져 있으면 기력이 쇠한다고 하는데 언젠가 다시 내 짝을 만날 거라는 믿음으로 두 나무가 버틴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이 17일 오전 강화군 서도면 볼음리에서 강화군, 한국문화재재단, (사) 섬연구소와 공동으로 개최한 천연기념물 제304호 강화 볼음도 은행나무 민속행사에서 한국화가 신은미 씨가 아쟁산조에 맞춰 북한의 암나무를 수묵화로 그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문화재청

민속행사는 강령탈춤 마당놀이로 시작해 강제윤 섬 연구소장의 ‘평화의 시’ 낭독, 태평성대 공연으로 이어졌다. 한국화가 신은미 씨가 아쟁산조에 맞춰 북한 암나무를 그린 퍼포먼스에서 신 씨는 단번에 노란 단풍이 든 은행나무 그림을 완성했다. 이 밖에도 박애리 씨의 쑥대머리 열창, 한국의 집 예술단 살풀이 공연에 이어 행사 대미를 장식한 풍물놀이 시간에는 마을 주민들도 무대에 올라 흥겨운 감정을 나눴다. 행사 중간에는 “남북 통일”을 외치는 주민의 목소리가 들리는 등 서해 최북단 민간인통제구역인 작은 섬 볼음도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분위기가 가득했다. 김 청장은 “오늘 행사는 남북평화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로 해마다 꾸준히 이어지고 예전처럼 남북이 공동으로 같은 날 부부 은행나무 행사를 지내는 방법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천=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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