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의 영어 단어 타이푼(typhoon)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괴물 티폰(typhon)에서 유래했다. 100마리의 뱀 머리가 달린 이 괴물은 불을 내뿜고 폭풍우를 몰고 다니는 괴력이 있다고 한다. 태풍이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오는 불청객이기는 하나 ‘착하고 순한’ 태풍도 있다. 가뭄과 폭염이 극성을 부릴 때 찾아오는 태풍은 센 녀석만 아니라면 비를 뿌리고 더위를 날려주는 효자 노릇도 한다. 적조 해소에 태풍만 한 것도 없다.
원래 태풍에는 이렇다 할 이름이 없었다가 1953년부터 괌 소재 미국 태풍합동경보센터에서 붙인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했다. 이때는 여자 여름을 붙였다. 이는 미국 공군과 해군 예보관들이 자신의 아내와 애인의 이름을 붙이던 전통에서 유래했지만 1978년 이후 남녀 이름을 번갈아 사용했다.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14개국이 미리 제출한 자국 고유의 언어로 이름을 지었다. 국가태풍센터에 따르면 비공식적이지만 가장 먼저 태풍에 이름을 붙인 나라는 호주다. 호주 예보관들이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인의 이름을 따 “태풍 A가 엄청난 재난을 일으킬 수 있다”는 식으로 예보했다고 한다.
한반도를 꿰뚫을 것으로 예상되는 제19호 태풍 ‘솔릭’의 북상으로 전국에 비상이 걸렸다. 태풍의 한반도 관통은 6년 만이다. 한데 세력이 보통내기가 아니다. 중형급임에도 초속 최고 45m의 강한 바람을 동반하고 있다. 열차 탈선이 가능한 풍속이다. 북상 속도가 웬만한 태풍의 절반밖에 안 된다. 느리게 이동하니 광범위한 피해가 우려된다.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04년 이후 100여년 동안 역대급 태풍 10개 가운데 7개는 한반도를 관통했다. 5조원의 재산 피해를 남긴 2002년의 태풍 ‘루사’, 실종자를 포함해 849명의 인명을 빼앗은 ‘사라(1959년)’ 등이 그랬다. 모처럼 비바람을 몰고 와 더위를 식혀주는 것은 반갑지만 혹시라도 피해가 커지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권구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