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정부에 따르면 국방부는 2년마다 발간해 올해 말에 나오는 국방백서에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판문점 선언의 ‘남북은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한다’는 문구를 적극 이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백서에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대량살상무기, 사이버공격, 테러 위협은 우리 안보에 큰 위협이 된다며 ‘이러한 위협이 지속되는 한 그 수행주체인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다’라는 문구가 있다.
‘이러한 위협이 지속되는 한’이라는 전제에 최근 변화가 생겼으므로 ‘적’이라는 표현도 삭제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신 국방부는 ‘군사적 위협’ 등의 표현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백서에 북한을 적으로 규정한 것은 지난 1995년부터다. 국방부는 1994년 남북 접촉에서 박영수 북측 대표가 ‘서울 불바다’ 발언을 하자 1995년 국방백서에 ‘북한군은 주적’이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하고 참여정부 때인 2004년까지 유지했다. 그러나 2004년 국방백서부터는 이 문구를 삭제하고 ‘직접적 군사위협’ ‘심각한 위협’ 등으로 대체했다. 이후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연평도 포격이 일어나며 2010 국방백서에서부터 북한을 적으로 표기했다.
우선 찬성 측에서는 장병정신교육 교재, 군 내부 문서 등에 북한을 적으로 분명하게 적시하고 있으므로 굳이 외부 발간물에까지 표현을 넣어 북한을 자극할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한다. 북한에 대한 우리의 실질적 유화 조치로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외에 공식적인 비핵화 조치가 없는 상황이다. 서해 미사일 실험장 해체가 포착됐지만 국제사회·전문가 검증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우리만 공식 문서에 변화를 주며 성급하게 유화 신호를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설치를 두고 한미가 미묘한 의견차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한미동맹의 균열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일각에서는 북한 노동당 규약 등 공개적인 문서에 남한에 대한 표현을 유화적으로 고치는 것을 봐가며 우리도 움직이자는 절충론도 나온다.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일부 동시 철수 등과 같이 남북이 동시에 문구를 조정한다면 불필요한 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