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복 SC제일은행장
SC제일은행에는 ‘적도원칙(equator principles)’이라는 것이 있다. 멸종위기 동식물을 포함한 자연환경을 훼손하거나 원주민·세계문화유산 등에 영향을 주는 발전소·광산·댐 등의 건설에는 금융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포함해 각종 환경 및 사회적 리스크를 측정하는 내부 지침이다. 주로 적도 부근의 지역을 개발하면서 빚어지는 이슈에서 출발했기에 적도원칙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SC제일은행의 모기업인 스탠다드차타드(SC)그룹은 지난 2003년에 이를 채택했고 현재 전 세계 70여개의 금융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인 대기업이 있고 은행들도 최근 동남아를 비롯해 세계 각국으로 네트워크를 확산하는 추세다. 적도원칙을 살펴보다 보면 세계 무대에서 수백년 동안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기업들이 어떤 면에서 ‘글로벌하다’는 소리를 듣는지 가늠해보게 된다.
첫째, 글로벌 기업은 전략을 수립하고 내부규정을 만들 때 세계적인 이슈와 흐름을 이해하고 수렴한다. 환경과 기후에 관한 국제협약 내용을 감안해 비즈니스 원칙을 정하고 국제기구가 펼치는 인구·식량·교육 사업에 파트너로 참여하기도 한다. 국제적 제재를 받는 국가들과의 무역 및 금융거래 제한 조치에 동참하기 위해 많은 예산을 들여 내부 모니터링시스템을 구축하고 직원 연수도 강화한다. 물론 이런 활동들은 적지 않은 비용을 수반하지만 글로벌 플레이어로서 역할을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둘째, 여러 나라의 공동 프로젝트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비즈니스 기회를 모색한다. 예를 들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는 중국만의 사업이 아니라 100여개 국가 및 국제기구가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이 엄청난 기회를 잡기 위해 벌써 전 세계 80여개국의 기업과 은행들이 너도나도 발을 들여놓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여러 나라에서 영업 활동을 하는 네트워크의 강점에 기반해 어떤 역할과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앞다퉈 피력하며 미래의 수익원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셋째, 기업과 개인의 국제적 활동을 지원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세계 각국의 규제나 제도·세법 등 지역 노하우와 국제 관습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른 기업이나 개인의 해외 진출 비즈니스를 지원해줄 수 있다. 글로벌 은행의 경우에도 진출해 있는 각국의 현지 경제 및 금융 시장과 규제에 대한 축적된 경험과 전문성이 있어 복잡한 다자무역에서도 이러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통합된 금융지원을 할 수 있다.
필자가 경험해보니 글로벌한 감각을 갖추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하지만 세계 무대를 누비는 우리나라의 글로벌 기업과 금융회사들이 앞으로 더 많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