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아시안게임 여자 100m 허들 우승 뒤 태극기를 두르며 기뻐하는 정혜림. /연합뉴스
‘허들공주’ 정혜림(31·광주광역시청)이 아시안게임 세 번째 도전에서 드디어 ‘아시아 허들 여제’로 등극했다. 지난 2010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예선 탈락, 2014인천아시안게임 때는 마지막 허들에 걸려 4위에 그친 아픔을 한순간에 털어냈다.
2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겔로라 붕 카르노(GBK) 주 경기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 허들 100m 결선에서 정혜림은 처음부터 압도적인 기량으로 치고 나가더니 열 번째 허들을 넘어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1위를 지켰다. 기록은 13초20. 2016년 6월 고성통일 전국실업대회에서 세운 13초04의 개인 최고 기록에는 못 미쳤지만 2위 노바 에밀라(인도네시아)를 0.13초 차로 멀찍이 떨어뜨린 좋은 기록이다.
아시안게임에서의 불운을 딛고 지난해 아시아선수권 우승과 올해 13초11의 아시아 랭킹 2위 기록을 내며 착실하게 이번 대회를 준비해온 정혜림은 이날 예선을 전체 1위(13초17)로 통과한 기세를 끝까지 잃지 않았다. 인천아시안게임 우승자인 우수이자오(중국)가 이번 대회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고도 경기에 나오지 않은 것도 정혜림의 금메달을 도왔다. 올해 정혜림이 꾸준하게 13초1대를 뛴 반면 우수이자오는 딱 한 번 13초08을 뛰는 등 기복이 있었기 때문에 우수이자오가 정상적으로 출전했더라도 정혜림을 넘기에 어려웠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정혜림의 금메달은 2위 일본과의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며 6회 연속 종합 2위 수성이 사실상 어려워진 한국 선수단 전체에 단비였다. 일본은 수영에서 한국을 압도했고 이제 막 뚜껑을 연 육상에서도 한국보다 월등하게 많은 메달을 수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정혜림의 정상 등극은 한국 육상과 한국 스포츠가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게 하는 반가운 소식이다. 4년 전 금메달이 없었던 한국 육상은 8년 만의 금메달로 모처럼 어깨를 폈다.
한편 8년 만의 네 종목 싹쓸이까지 넘봤던 골프는 1998년 방콕 대회 이후 20년 만에 처음으로 ‘노골드’에 그쳤다. 은 2개와 동메달 1개. 남자 개인전에서 오승택(20·한국체대)이 일본 선수에게 1타 뒤진 2위로 마감했고 남자 단체전은 동메달에 그쳤다. 여자 개인전은 1990년 베이징 대회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후 처음으로 메달 획득에 실패하는 충격을 맛봤다. 단체전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한국은 단일 국가 최다 금메달(13개)을 자랑하는 세계 최강으로 군림해왔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일본과 필리핀(각 2개)에 금메달을 내주고 말았다. 프로 무대에서는 여전히 ‘코리안 시스터스’가 위세를 떨치는 가운데 아마추어 골프에서는 아시아 각국의 전력 평준화 속에 예측불허의 양상이 갈수록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배드민턴은 이날 남자 단·복식 모두 8강에서 미끄러지면서 40년 만에 아시안게임 노메달 수모를 겪었다. 이용대 등 스타 플레이어들의 은퇴 이후 세대교체 과정에서 나온 대회라고는 해도 아쉬운 결과다. 한국 배드민턴의 전설 박주봉 감독이 이끄는 일본은 6개의 메달을 따내며 2020도쿄올림픽에 대한 기대를 장밋빛으로 물들였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