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3년? 롯데그룹, e커머스 본격 재정비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18년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최근 몇 년간 내우외환으로 제자리걸음을 했던 유통공룡 롯데가 오랜만에 사업 이슈로 주목 받고 있다. 5월 15일 강희태 롯데백화점 대표가 대규모 온라인 사업 투자 계획을 직접 밝힌 데 이어, 8월 1일에는 ‘롯데쇼핑 e커머스사업본부’를 공식 출범하며 온라인 사업 재정비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사진=롯데쇼핑

지난 몇 년은 롯데에게 정체된 역사였다. 다양한 채널과 큰 규모를 갖고 있어 국내 유통 No.1이라는 타이틀은 유지할 수 있었지만, 사업성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히 온라인 사업 부문에서의 부진이 뼈아팠다. 모든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역마진까지 감수하며 온라인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을 때, 롯데는 그게 마치 다른 세상 이야기인 양 정체되어 있었다.

과거 롯데가 국내 유통사 중 가장 기민한 e커머스 대응으로 주목받았다는 점에서 온라인 사업 부진은 더 뼈아픈 부분이다. 롯데는 1996년 우리나라 최초 인터넷 쇼핑몰인 롯데 인터넷백화점(현재 롯데닷컴)을 오픈하며 세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이런 발 빠른 움직임은 2015년까지도 이어져 롯데는 옴니채널(Omni-channel·소비자가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상품을 검색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 구축에 가장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으로 시장 관계자들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 잃어버린 시간

“그 이후엔 도대체 뭘 했는지 모르겠어요.”

시장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2015년 이후 롯데의 온라인 사업 부문 활동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롯데 유통 계열사들이 워낙 많고 이들이 운영하는 닷컴 전체 규모가 커 크게 도드라져 보이지는 않지만, 개별 닷컴 실적은 2015년 이후 성장세가 멈췄거나 역성장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실제 수치로도 확인된다. 코리안클릭의 온라인 플랫폼 순방문자 수 비교 자료에 따르면, 2015년 롯데i몰의 순방문자 수는 월 800만 명 이상으로 신세계그룹의 통합 온라인몰 SSG.COM과 비슷한 규모를 자랑했다. 여러 계열사 온라인몰 중 한 곳만으로도 경쟁사 통합 온라인몰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롯데 온라인 사업이 탄탄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2018년 현재에는 SSG.COM이 900~1,000만 명으로 비슷한 수치를 유지하는 데 반해, 롯데i몰은 600만 명 이하로 순방문자 수가 25% 이상 급감한 모습을 보여 롯데의 부진한 온라인 사업 현황을 실감케 하고 있다.

롯데도 그동안 온라인 사업 부문의 부진한 성과를 인정하는 모습이다. 강희태 롯데백화점 대표는 5월 15일 ‘롯데 e-커머스 사업 전략 및 비전 기자간담회’ 브리핑에서 신세계그룹이 온라인 사업에서 더 잘하고 있다고 인정해 화제가 됐다. 하지만 “원하는 모습으로 e커머스사업이 세팅되면, 롯데는 (신세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질 것”이라 덧붙여 상당한 자신감을 내보이기도 했다.

◆ 여전한 자신감

2~3년 세월을 허비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롯데가 온라인 사업 부문에서 여전히 자신감을 나타내는 이유는 경쟁사 대비 다양한 유통 채널을 가지고 있는데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온라인 회원을 보유하고 있어 통합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란 예측 때문이다. 각종 악재가 겹치면서 유보되긴 했지만, 온라인 유통채널 통합 논의 역시 이전부터 진행됐던 터라 상당한 준비가 돼 있을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롯데그룹 관계자는 말한다. “3년 전부터 통합 시너지 효과에 관심을 가지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신세계에서 SSG.COM을 선보였을 땐 통합 논의가 감사실 감사 주제에 오르기도 했고요. 물류부터 닷컴 프런트 통합에 이르기까지 심도 있는 얘기가 오갔고, 정책본부(현재는 BU 부서로 업무 이관)와 미래전략센터를 중심으로 통합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나 시너지 효과를 파악하기 위한 연구와 조사가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2016년에는 온라인 협의체가 구성돼 계열사 온라인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의견 수렴을 거친 바도 있습니다.”

계열사 쇼핑몰을 한데 모은 포털 하나 만드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통합 롯데 쇼핑몰을 만들었다고 해서 알아서 사용자가 늘거나 매출이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다. 방문자의 추가 구매를 유도하는 등 치밀한 플랫폼 구성을 하지 못하면 시너지 효과는커녕 오히려 웹 사이트나 앱 변경에 따른 혼란으로 소비자가 이탈하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 물류가 문제

통합 쇼핑몰을 운영하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물류다. 통합 쇼핑몰을 통해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롯데하이마트 물건들을 샀는데 배송이 제각각 이뤄져 고객이 몇 차례에 걸쳐 상품을 나눠 받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류차량이 개개 고객 주문에 맞춰 각 물류센터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취합해 배송하는 건 더욱 불가능하다. 배송 시스템을 무한정 늘릴 수 없는데다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과거 통합 쇼핑몰 운영을 고민하던 롯데그룹에서 가장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 역시 각 유통 채널이 별도로 운영 중이던 물류를 통합하는 일이었다.

2015년부터 진행됐던 물류 통합 논의는 2016년 그룹 비전 선포 시기 즈음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올해 5월 있었던 롯데 e-커머스 사업 전략 및 비전 기자간담회에서도 이 기조는 유지되는 모습이었다. 대규모 통합 물류센터 건립 계획 질문에 롯데는 “계획이 없다”라며 “대규모 통합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것이 최적화된 물류 모형인지 회의적이다”라고 답했다.

◆ 통합 물류센터는 No

일견 대규모 통합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건 앞서 설명했던 물류 문제를 해결하는데 최적의 솔루션인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신세계그룹은 SSG.COM을 운영하기 위해 통합 물류센터를 새로 짓기도 했다. 그럼에도 롯데가 통합 물류센터 운영에 부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롯데그룹의 한 관계자는 말한다. “신세계가 통합 물류센터를 운영 중이긴 하지만, 완전한 의미의 통합 물류센터는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마트만 봐도 여전히 점포를 활용한 점배송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거든요. 왜 롯데나 신세계처럼 규모가 되는 기업들도 통합 물류센터 운영에 애를 먹고 있을까요? 이건 백화점, 마트, 슈퍼 등 각 유통 채널 물류센터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물류센터 구조가 완전히 다르거든요. 차량 도킹 높이부터 시작해서 유통 채널 별로 요구하는 창고 구조가 너무나 다릅니다. 기존의 어느 한 창고를 지정해서 ‘이제부터 여기가 통합 물류창고’ 이런 식으로 할 수 없다는 거죠. 저희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기존 창고를 다 헐고 새로 짓는다 해도 구조적인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고 해도 결정적으로 위치 문제가 남고요. 각 유통 채널이 요구하는 물류 창고 위치도 천차만별이거든요.”

롯데는 대규모 통합 물류센터 운영 대신 롯데가 가지고 있는 물류·택배회사 조직과 전국에 흩어져 있는 1만1,000여 개의 점포를 유기적으로 묶어 물류 통합 문제를 해결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른바 물류 혁신을 통해 물류 통합 난관을 헤쳐 나가겠다는 뜻이다. 이는 성공하기만 하면 고객 편의성을 확보하면서도 물류 통합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묘안이다.

◆ 롯데의 역량이 관건

8월 1일 e커머스사업본부 출범으로 롯데는 온라인 사업에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었다. 롯데는 향후 5년간 온라인 부문에 3조 원을 투자해 2022년까지 매출 20조 원을 달성, 업계 1위로 올라서겠다는 계획이다. 2018년 현재 롯데그룹 유통 부문 전체 온라인 사업 매출은 7조 원 규모이고 온라인 1, 2위 업체인 G마켓과 11번가 매출 규모는 각각 9조 원대이다. 롯데그룹의 매우 공격적인 행보를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시장은 롯데의 이 같은 목표에 롯데의 온라인 사업 역량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장 관계자는 말한다. “하려면 빨리 했어야했는데 좀 늦은 감이 있습니다. 지금도 속도를 내야 하는데 현재 롯데 상황에서 그게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신동빈 회장의 옥중경영이 길어지면서 의사 결정이 좀 더딜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요. 새로운 통합 쇼핑몰엔 집객과 추가 구매를 유도할 수 있는 여러 장치와 차별화할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한데, 이 문제를 롯데가 앞으로 어떻게 해결하는지 지켜봐야 합니다. 방대한 유통 채널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통합할 건지도 궁금하고요. 결국 롯데가 얼마나 온라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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