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욱 신임 통계청장이 27일 서울 영등포구 은행로 수출입은행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권욱기자
“장하성 실장님, 주 질의할 때 제가 통계청에서 작성한 통계자료를 인용해서 질의했더니 실장께서 ‘그것은 잘못된 통계다’ 이렇게 일언지하에 무시하는 발언을 했습니다.”(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
“아마 속기록을 다시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지난 23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권성동 의원과 장하성 정책실장이 통계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이유는 장 실장이 꺼낸 생산가능인구 감소치였다. 장 실장은 지난달 7만5,000명의 생산인구가 감소했고 2016년에는 14만2,000명이 증가했기 때문에 최근 2년간 약 20만명이 줄었다고 했다. 반면 권 의원은 통계청 자료를 인용해 올해 5만명, 내년에 7만명 줄어들 뿐이라고 맞받았다. 결국 황수경 전 통계청장이 “두 분 다 맞는 말씀”이라고 정리했다.
최근의 통계전쟁은 통계를 입맛대로 가공하는 데서 시작한다. “최저임금 인상 긍정 효과 90%”도 자영업자와 해고된 실직자를 빼고 계산해 나왔다. 한쪽 측면만 강조하는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틀린 경우도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취업자 수와 고용률, 상용근로자의 증가,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의 증가는 1차적인 숫자는 맞지만 진실이 아니다. 상용근로자만 해도 지난 10년간 마이너스를 기록한 적이 없다. 핵심은 늘어나는 폭인데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50만~60만명까지 달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다. 취업자 증가 폭도 30만명 선이 평균이었지만 지난달에는 5,000명까지 낮아졌다. 5,000명도 증가는 증가지만 이는 통계를 악용하는 사례다. 100원을 벌던 기업이 1원을 벌어도 이익이 남는 것이지만 경영에 빨간불이 들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최저임금 긍정 효과 90%라는 자료가 나오는 데 관여한 인사가 신임 통계청장으로 임명된 것 자체가 통계의 정치화라며 우려를 나타낸다. 통계를 정부 입맛에 맞게 손질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당장 통계가 정치 이슈로 계속 떠오르고 있다. 이날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청와대가 통계청장을 경질했다”며 “국가 경제에 불이 났는데 불낸 사람이 아니라 불이 났다고 소리 지르는 사람을 나무란 꼴”이라고 평가했다. 같은 당의 주호영 의원도 “국가 통계는 신뢰와 정직이 생명이다. 통계를 소위 마사지하기 시작하면 국가 경제는 망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박근혜 정부 때 폐지됐던 ‘통계 사전협의제’가 새 정부 들어 슬그머니 부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에게 통계가 가장 먼저 공개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 부처와 청와대에 미리 보고된 후 국민에게 발표되는 것이다. 23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2·4분기 가계동향과 관련해 “오늘 아침 티타임 회의(매일 오전9시께) 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보고를 받으셨을 테고 보고한 주체 쪽에서 말씀이 있으셨겠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이 통계 발표 전에 보고를 받았다는 뜻으로, 이를 보고했을 청와대 참모들은 먼저 통계청으로부터 자료를 받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올 초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도 “조만간 나올 고용동향지표는 좋게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나온 1월 고용동향 중 취업자 수는 지난해에 비해 33만4,000명이나 증가했다.
당국자에게 미리 보고되는 통계는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 청와대와 정부가 해당 통계 발표일에 굵직한 정부 대책을 내놓거나 대통령의 현장방문을 기획할 수 있다. ‘물타기’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객관적이어야 할 통계가 정치화하면 국가 통계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이것이 정책 불신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정치화한 통계는 나라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 부문 일자리가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1.3%)에 비해 낮다고 한 통계는 공공 부문 81만명 채용을 불러왔다. 하지만 지난해 6월 통계청은 공공 부문 일자리가 8.9%라고 공식 발표했다. 나라 곳간에 부담을 주는 공공 부문 채용이 아전인수식 통계에 구멍이 뚫린 셈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탈원전까지 국민이 동의했다고 결론 내린 것도 통계를 입맛대로 이용한 것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탈원전은 관련 일자리와 원전 수출에 치명타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문 대통령이 통계에 대한 제대로 된 보고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왜곡된 통계가 계속되면 나라 경제만 부담”이라고 설명했다.
/세종=김영필기자 이태규기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