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화텅 텐센트 회장이 지난해 12월 6일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포춘 포럼’에서 다른 기업인의 발언을 듣고 있다. /EPA연합뉴스
국내 최대 게임사 넷마블(251270). 국내 1위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035720)톡’을 운영하는 카카오. 아시아 지역을 뒤흔든 게임 ‘배틀그라운드’ 개발사 ‘펍지’의 모기업 블루홀. 인터넷 전문은행의 대표 주자 카카오뱅크(한국카카오은행). 각각의 영역에서 대표적인 이들 기업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중국 최대의 플랫폼(기반 서비스) 기업 ‘텐센트’가 대주주라는 점이다. 일부 기업에는 텐센트의 임원이 이사회 구성원으로 참여해 내부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다. 이미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을 뒤흔들 만한 막강한 영향력을 갖춘 셈이다.
28일 정보기술(IT) 및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텐센트가 국내 기업 7곳(상장사 2곳·비상장사 5곳)의 보유한 지분가치는 약 3조6,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텐센트는 카카오에 지난 2012년 720억원을 출자하며 국내 IT 업계에 처음 문을 두드렸다. 이후 2014년 넷마블에 5,330억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하며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고 지난해에 이어 최근까지 총 5,700억원 규모의 블루홀 지분 10%를 매입했다. 텐센트가 6년 동안 국내 IT 기업에 공개적으로 투자한 원금은 총 1조3,450억원으로 추산된다. 투자액 대비 2.5배의 평가익을 거둔 셈이다. 실제 텐센트는 2017년 연간보고서를 통해 “넷마블 등의 투자 기업의 증시 상장으로 기타 이익이 늘어났다”고 투자 성과를 소개하기도 했다.
(물론 텐센트가 국내 IT 업계에서 투자 성과만 낸 것은 아니다. 각 기업의 경영에 직접 참여하면서 좋은 서비스 또는 콘텐츠를 텐센트의 플랫폼에 올리거나 ‘벤치마킹’해 응용하는 형태로 ‘대박’을 쳤다. 특히 텐센트가 2011년 1월 모바일 메신저 ‘웨이신(위챗)’을 출시한 뒤 1년 앞서 나온 카카오톡의 발전된 기능을 가져오기 위해 당시 스타트업(초기 창업 기업)에 불과했던 카카오에 투자를 단행한 것이라는 후문도 있다.)
핵심에는 피아오얀리 텐센트 게임즈 부사장이 있다. 그는 카카오의 사외이사로 지난 2012년 4월 선임된 뒤 넷마블에서도 2014년부터 이사회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피아오얀리 부사장은 재중동포 3세로 한국어와 중국어 등 4개 언어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던전앤파이터’나 ‘크로스파이어’ 등 한국의 유명 게임을 중국 시장에 소개하며 성과를 인정받았다. 텐센트가 2대 주주로 오른 블루홀의 이사회에도 참여한다면 피아오얀리 부사장이 사외이사로 선임될 가능성이 높다.
텐센트의 투자를 받은 국내 IT 기업도 사업 측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카카오는 텐센트의 간편결제 서비스 ‘위챗페이’를 참고해 ‘카카오페이’를 출시했다. 또한 카카오의 콘텐츠 자회사 카카오페이지는 자사의 웹툰 등 지식재산권(IP)을 텐센트 플랫폼에 올려 중국에서 ‘대박’을 쳤다. 블루홀과 넷마블은 자사의 대표 게임을 중국 시장에 출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텐센트의 영향력에 기대를 걸고 있다. 네시삼십삼분은 이미 2개 이상의 작품을 텐센트를 거쳐 중국 시장에 선보였다. 텐센트로부터 2013년 140억원을 투자받은 카카오페이지(옛 포도트리)의 이진수 대표는 “텐센트와의 제휴를 통해 중국 내 사업을 성장시키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텐센트는 이미 PC 기반의 통신 수단(큐큐·QQ)과 모바일 메신저(웨이신·위챗), 포털(큐큐닷컴·QQ.com), 게임(텐센트 게임) 등 최대 10억명의 월간 실사용자 수(MAU)를 기반으로 중국 최대 IT 기업으로 성장했다. 게다가 PC와 모바일을 아우르는 다양한 게임을 보유했고 동영상 스트리밍(실시간 중계) 서비스도 성공하면서 종합 플랫폼 기업으로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국내 IT 기업으로 비유하면 네이버, 카카오, 넷마블, 카카오뱅크 등 대표 온라인·모바일 플랫폼 기업을 묶어놓은 초대형 공룡인 셈이다. 장재영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텐센트는 최근 미디어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한데다 기존의 강력한 온라인·모바일 플랫폼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성장을 원하는 국내 IT 기업에 텐센트와의 협업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됐다. 문제는 텐센트를 통한 중국 시장 진출은 점점 어려워진 반면 국내 시장의 텐센트 종속은 더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곳이 게임업계다. 중국 규제 당국이 한국 게임뿐만 아니라 모든 외국 게임의 신규 출시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텐센트는 ‘몬스터헌터 월드’의 판매를 출시 6일 만에 중단하기도 했다. 일본 게임 개발사 ‘캡콤’이 내보인 몬스터헌터 월드는 이미 ‘판호’를 받았는데도 규제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아울러 텐센트가 한국 게임에 과거만큼 관심을 보이지 않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텐센트는 거대 내수 시장과 자본, 개발력을 다 가진 시장의 제왕”이라며 “판호를 받기가 어렵고 ‘로열티’를 줘야 하는 한국 게임을 유통하기보다는 비슷한 작품을 직접 만드는 쪽으로 사업 전략을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법으로는 텐센트에 종속되지 않으면서도 중국 현지 시장 진출을 위해서 전략적으로 협업하는 방식이 꼽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국내에서 마땅한 투자자를 찾기 어려운 중소 게임 개발사는 텐센트가 요구하는 투자 유치 조건을 거의 다 수용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렇게 되면 게임 개발 노하우나 ‘소스코드’ 등 무형자산이 중국 쪽으로 흘러들어 가면서 종속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민구·양사록기자 mingu@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