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화의 4차 산업혁명] 노동가치, 보호아닌 자율서 나와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
<97>노동 가치회복이 진정한 워라밸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

산업혁명 이전에 수단과 목적이 분리되지 않은 일은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고 일이 분업화되면서 생산효율은 급등했다. 하루에 혼자서 양복 한 벌 만들던 생산성이 분업을 통해 100벌 이상을 만들게 돼 사회 전체의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생산과 소비의 분리는 노동가치를 사라지게 하고 자원 낭비를 초래하고 부의 양극화를 일으켜 노사갈등을 야기했다.

효율적으로 분업화된 노동에는 가치와 재미가 없다. 가치가 없는 타율적 노동은 금전적 보상으로만 유지될 수 있기에 분업화된 노동을 임금과 교환하는 노동계약이 수립됐다. 초기에는 기업가의 협상력이 압도적 우위에 있는 노동착취 현상이 발생했다. 이의 대응책으로 개별 노동자들은 집단화된 노동조합을 만들어 기업가와의 투쟁에 돌입했다. 그리고 자본과 노동 간 협상력의 균형은 시대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대기업은 노조 우위, 중소기업은 기업가 우위의 양극화 구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노사관계는 키워서 나누는 공동체가 아니라 싸워서 빼앗는 투쟁관계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 대기업 노조의 강력한 협상력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대기업 임금상승을 촉발했다. 압축성장 과정에 배태된 경영상의 약점으로 대기업 경영진은 노조에 굴복하고 그 보상을 하청 중소기업에서 구했다. 대·중소기업의 불공정거래로 지난 1980년대 중반까지 거의 차이가 없었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는 이제 2배 가까이 확대됐다.


글로벌 임금 비교에서 지금 대한민국 대기업의 임금은 생산성 대비 최고 수준임이 밝혀진 지 오래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없는 기업의 경쟁력 향상은 기대할 수 없다. 대기업들은 국내 공장 증설을 포기하고 해외로 탈출했다. 국제경쟁력이 없는 공장 건설은 사실 경영자의 배임행위다. 2000년대 이후 현대자동차는 국내에 공장을 추가 건설하지 않았다. 삼성전자(005930)는 주요 공장들을 베트남 등으로 이전했다. 양질의 대기업 일자리가 더 이상 창출되기 어려운 구조다. 기업 내의 기능적 유연성조차 없어 생산라인 재배치도 할 수 없는 경직된 노사관계에서 대기업 공장의 해외 건설과 세계 최대의 로봇 도입률은 필연적인 결과로 볼 수 있다. 이 모두는 부가가치 창출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가 파괴된 데서 비롯된다.

가치가 상실된 노동은 임금획득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노동자 보호를 위해 최저임금과 주52시간근로제가 도입됐다. 그런데 노동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져보자. 노동의 가치가 부활하고 부가가치 창출과 분배의 선순환이 가능하다면 과연 국가가 노동조건을 통제할 이유가 있을까. 독일이 생각하는 좋은 노동은 보호되는 노동이 아니라 자율적인 노동이다. 노동의 방법과 시공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좋은 노동이다. 그래서 독일은 기본소득제를 배제하고 있다. 독일의 ‘노동4.0’에서 일은 하늘이 주는 선물이라고 인지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과 근로시간 단축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의 가치 회복이고 이것이 진정한 ‘워라밸’이다.

노동의 가치 회복과 더불어 가장 바람직한 노사관계는 공동체가 협력해 부가가치 창출과 분배를 선순환시키는 구조일 것이다. 가치창출과 가치분배의 선순환 고리가 파괴되면 노사관계는 착취와 쟁취의 대립구도에 돌입하게 된다. 예컨대 기업의 부가가치를 독식하려는 착취의 자본가와 적자기업에 임금과 성과급 인상을 부르짖는 쟁취의 노조 모두가 선순환의 파괴자다. 노동의 대가는 가치창출을 통한 이익의 적정분배가 돼야 하고 적정분배는 기업의 장기적 부가가치 증대와 연결돼야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각종 스마트워크 기술들을 통해 근로자들이 일의 목적과 의미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게 한다. 구글 같은 기업의 성공은 단순히 기술만이 아니라 수단과 목적을 결합하는 노동의 가치 회복에 대한 역할이 지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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