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영국 런던의 고급 젤라토 체인 오도노스(Oddono’s) 매장 앞에 이런 안내문이 붙었다. “당분간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팔 수 없습니다. 마다가스카르 일대의 기상악화로 시장에서 바닐라 재고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현재 바닐라 가격은 전년에 비해 500% 폭등한 상태입니다. 공급이 양호해질 때까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메뉴에서 제외하니 양해 바랍니다.”
천연 바닐라향을 쓰는 다른 유럽 젤라토 가게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런 사태가 빚어진 것은 전 세계 바닐라의 75~80%를 공급하는 마다가스카르에 지난해 에나우(Enawo) 등 대형 사이클론이 닥쳐 바닐라 농장 대부분이 큰 피해를 당했기 때문. 코카콜라·유니레버·다농 등 글로벌 수요처의 재고마저 바닥나면서 바닐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당 100~130달러였던 것이 최고 620달러까지 뛰어올라 500~520달러 선이던 은(銀) 가격을 넘어섰을 정도다.
공급이 좀체 회복되지 않으면서 지금도 420~600달러를 유지하고 있다. 바닐라 넝쿨은 심은 뒤 3~4년이 지나야 향신료 원료로 쓰는 콩 꼬투리가 맺힌다. 바닐라 농장이 한번 피해를 당하면 공급량이 쉽게 늘지 않는 이유다. 바닐라는 원래 멕시코에서 자생한 난초과 식물로 당시 아즈텍인들은 열매인 콩 꼬투리를 수확한 후 발효·건조를 반복해 초콜릿 음료에 향을 내는 데 사용했다.
지금은 아이스크림·쿠키 등에 달콤한 향을 내는 향신료로 쓰이는데 대부분의 디저트는 바닐라를 기본으로 다른 과일향을 첨가해 만든다. 질 좋은 추출물은 화장품·향수에도 사용된다고 한다. 바닐라를 향신료의 어머니로 부르고 미국·유럽 부유층과 미식가들이 천연 바닐라만 찾는 까닭을 알 만하다. 바닐라가 마다가스카르 등 인도양 지역으로 건너온 것은 19세기 초. 기후가 알맞고 값싼 노동력이 있는 곳을 찾던 유럽 원정대가 최적의 재배지로 마다가스카르섬·인도네시아 인근을 선택해 오늘에 이르렀다.
바닐라 가격이 고공행진을 계속하자 마다가스카르 사회가 요동치고 있다는 소식이다. 바닐라 부자라는 말이 생길 만큼 국민들 사이에 위화감이 심각한 모양이다. 최근에는 일확천금을 노린 갱단이 들끓어 경찰이 통제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한다.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바닐라 버블’ 현상이 수년 더 갈 것으로 전망된다니 마다가스카르의 혼란상도 길어질 것 같아 안타깝다. /임석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