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관심도 크다. 국민연금에 대한 의심과 공박이 그칠 줄 모른다. 그럴 만하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30년 남짓하지만 규모는 638조원으로 세계 3위니까. 인구(27위)나 경제 규모(11위)에 비해 순위가 높다. 많은 금액이 쌓여 있는 점 역시 주로 적립해왔기에 당연하다. 지난해 말 기준 보험료 납부와 운용으로 조성된 금액은 약 785조원이다. 여기서 163조원이 연급급여 등으로 나갔다. 기금적립액은 오는 2043년 2,561조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다음부터다. 내는 사람은 줄어들고 받는 사람이 많아져 파이(적립액)가 더 이상 커지지 않고 줄어들게 돼 있다. 적자 구조가 불가피하다. 연금지급을 위해 보유자산 매각을 시작하면 주식시장마저 항구적 침체에 빠질 수 있다. 초고령사회로 치닫는 현실에서 기금 고갈은 시간문제다. 물론 적립액이 사라져도 연금지급은 계속될 수 있다. 국가가 남는 재정을 투입하거나 국채를 발행해 연금지급 재원을 조달한다는 것이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지급보장의 내용이다. 어떤 방식이든 그 부담은 후세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끝없는 폭탄 돌리기 구조에 접어드는 셈이다.
가뜩이나 불안한 미래에 짓눌린 젊은 세대에게는 참담한 유산이 아닐 수 없다. 미래 세대의 힐난이 들려오는 것 같다. ‘누가 이런 구조를 만들었고 제대로 고치지 않았는가. 우리 이전 세대들은 도대체 뭘 했는가.’ 책임져야 할 집단이 분명히 있다. 크게 세 집단, 과거 정부와 현 정치권, 언론이 바로 그들이다. 먼저 과거 정부를 보자. 국민연금제도는 급작스럽게 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나름대로 오랜 기간 정책 연구를 거쳤다. 국민연금 개념이 국내 언론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67년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서울경제신문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경제의 목표는 복지 자본주의’라며 연금제도 도입 의사를 처음 밝혔다.
1973년에는 ‘복지연금’ 도입을 발표했으나 경제단체들의 반대와 1차 석유 위기로 무산되고 1988년에야 국민연금은 빛을 봤다. 그러나 애초부터 문제를 안고 태어났다. 출범 당시 보험료율은 3%에 소득대체율은 70%였다. 몇 차례 고쳐 보험료 납부율을 9%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45%까지 내려 기금 고갈 위기를 조금씩 늦추고 있으나 군사정권의 근시안적 포퓰리즘과 무능력으로 한번 잘못 끼운 단추가 내내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치권은 이를 고치기보다 정쟁의 도구로 활용하는 데 여념이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두 차례 요율과 소득대체율을 조정할 때도 야당은 반대 논리를 펼쳤다. 박근혜 정부 초기 노령연금과 합치는 문제로 국민연금이 공격받을 때 야당도 정략적 도구로 썼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 진영논리의 연장선에 서서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는 ‘난파 위기 국민연금…국민 지갑만 터나’라는 식의 보도에 대해 불안을 부추기고 진실을 감추는 행위라고 질타한다. 지금까지의 행태로 보면 신구 정치권과 일부 언론은 국민연금의 역적(逆敵)과 다름이 없다.
미래 세대에게 손가락질 받을 대상이 둘 더 있다. 국민연금 초기 수급자들은 ‘연금을 월 38만원밖에 못 받는다’며 불만이지만 정작 낸 돈은 월 9만원 정도다. 평생 받아갈 연금이 30배에 이르는 경우도 가능하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삼았던 국민연금 초기 가입자라면 동년 계층 평균 이상이 많지만 연금개혁론이 나올 때마다 분개하거나 숨는다. 후대에게 떳떳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해마다 적자가 나도 재정에서 책임지는 공무원·군인연금, 기금 고갈이 눈앞인 사학연금 등도 개혁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소한 신규 임용자에게 국민연금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본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수십만 직역연금 가입자에 대한 상대적 특혜를 두고 가입자가 2,141만명인 국민연금을 개혁한다는 것이 말이 되나. 직역연금 개혁 없는 국민연금 개혁은 불가능하다.
국민연금 개혁 문제는 단순히 돈을 더 내고 덜 받고의 문제를 떠난다. 한국 사회가 이만큼 성장한 요인은 무엇인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못 먹고 못 입어도 자식에게는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며 사람에게 투자한 덕분이 아닌가.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후손에게 짐을 지울 수는 없다. ‘국민연금 오적’이라는 후대의 평가가 두렵다.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나라의 장래다. 불안한 미래, 세대 간 갈등을 막을 방법은 단 한 가지다. 기성세대가 반성하고 양보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