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 아르헨티나, 브라질의 철강 쿼터에 대해 선별적인 면제를 허용하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25% 철강 관세를 면제받는 조건으로 쿼터를 수용한 국가도 품목 예외 신청을 통해 쿼터 이상으로 수출할 길이 열린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품목 예외를 허용하면 자칫 쿼터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고 판단해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한국 철강에 대한 쿼터가 철회됐다는 얘기도 나왔으나 사실과 다르다”며 “큰 틀에서 쿼터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일부 품목에 예외를 허용해줄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결정은 자국 산업보호를 위해 높인 보호무역조치가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불러일으킨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철강 수입이 막히면서 현지 자동차와 전자업체들이 감당해야 할 비용이 늘어 수익성이 악화했다. 실제 제너럴 모터스(GM)는 2·4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올해 주당순이익 전망치를 당초 6.30~6.60달러에서 6.0달러로 낮춰 잡았다. 자동차 제조에 들어가는 철강의 상당수를 국내산을 써왔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부과 여파로 미국 내 철강 가격이 전반적으로 높아진 탓이 컸다.
에너지 업계의 피해는 특히 컸다. 국제 유가가 반등하면서 미국 내 원유채굴 시추기(리그)를 늘리던 상황. 강관 수요도 따라 커지고 있던 차에 수입이 막히면서 미국 내 강관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미국 내 유정용 강관 가격은 지난해 12월 톤당 1,047달러 수준에서 올 7월 1,461달러로 40% 가까이 뛰었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선 이들 업체의 목소리를 마냥 외면할 수 없게 됐다는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와 철강업계가 현지 업체들의 피해를 지렛대 삼아 상무부에 품목 예외 지정을 거듭 요구해왔던 게 주효했다”고 했다.
미국이 입장을 바꿨지만 철강업계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다. 신청을 하더라도 실제 쿼터 적용 예외 품목으로 지정될 수 있을지 불분명해서다. 미국은 예외 품목 신청을 받은 뒤 자국 업체들에 의견을 묻는 절차를 거친다. 의견을 제출하는 업체 중엔 철강 수요업체뿐만 아니라 현지 철강사들도 포함돼있다. 업계는 미국 철강사들이 “수급을 맞출 테니 수입을 계속 막아달라”고 요구할 것으로 본다. 강관업계 고위관계자는 “현지 강관업체들은 생산량을 적정 수준에서 조절하면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며 “강관이 예외 품목 검토 대상에 오르면 자신들이 생산량을 늘릴 수 있으니 수입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지 철강업체의 반발을 넘어서더라도 예외 품목으로 최종 지정되기까진 적어도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철강업체들은 “쿼터 이상의 물량을 보낼 수 있는 틈이 생겨 그나마 다행”이라면서도 “글로벌 공급과잉이라는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무역장벽이 갑자기 낮아질 일은 없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김우보기자 ub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