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의 더블밀리언셀러(200만장 판매) 탄생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 24일 발매된 방탄소년단의 리패키지 앨범 ‘러브 유어셀프 결 앤서’는 선주문량만 151만장을 기록했다.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의 선주문량인 144만장을 넘어섰다.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1위 앨범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는 지난 7월 31일까지 국내에서만 178만장을 팔아치웠다. 지난해 발매된 방탄소년단의 ‘러브 유어셀프 승 허’는 현재까지 173만장이 팔렸다. 이 앨범은 지난 2001년 11월 발매된 god 4집 ‘길’(158만장) 이후 16년 만의 밀리언셀러(단일 음반, 가온차트 기준)를 기록했다. ‘더블밀리언셀러’ 앨범의 최근 기록은 2000년 발매된 조성모의 3집 ‘아시나요’가 기록한 207만장이다.
타이틀곡 ‘idol’ 리패키지 앨범 선주문량만 151만장
조성모 3집 ‘아시나요’ 이후 18년만에 200만장 코앞
MP3로 몰락했던 음반, 아이돌 성장으로 불 붙어
한때 음반위기론은 우리나라 가요계의 단골 논쟁거리였다. 1979년 조용필 1집 ‘창밖의 여자’가 대한민국 음반 역사 최초로 100만장을 넘긴 이후 1980년대 인기 음반의 수식어는 ‘100만장 돌파’였다. 이후 1990년대에는 서태지, 신승훈, 조성모 등 200만장 이상 앨범판매량을 자랑하는 가수들의 시대가 도래했다. H.O.T.는 아이돌 가수이면서도 100만장의 앨범을 판매했고, 김건모 3집 ‘잘못된 만남’은 280만장의 판매고를 올려 한국 기네스에도 등재될 정도였다. 하지만 MP3 플레이어가 등장하며 CD는 몰락했다. 인기 음반의 기준이 판매량 100만장에서 10만장으로 주저 앉았다. 2007년 판매량 1위 앨범 SG워너비의 ‘아리랑’은 한국음반산업협회 발표 기준 19만장을 파는데 그쳤다. 당시 전국에 ‘텔미’ 열풍을 일으켰던 원더걸스 1집 판매량은 4만7,000여장이었다. 줄어드는 시장 규모에 유명 음반판매점인 홍대의 ‘퍼플레코드’, 신촌의 ‘향음악사’ 등은 오프라인 매장을 철수했다.
그랬던 음반시장이 되살아났다. 아이돌의 성장은 몰락의 길을 걷던 음반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방탄소년단과 엑소가 인기몰이를 시작한 2015년 이후 국내 음반시장의 성장세는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워너원의 ‘0+0=1’은 82만장, 엑소 4집 ‘디 워’는 97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가온차트에 따르면 2011년 508만장이던 상위 100개 음반 판매량 총합은 2017년 1,448만 장으로 285% 성장했다. 해외 시장에서의 선전은 이 같은 추세에 불을 붙였다. 한류 가수들이 일본 오리콘에서 플래티넘(25만장 판매), 더블 플래티넘(50만장 판매) 인증을 받았다는 소식이 더이상 낯설지 않다. 세계 문화산업의 중심지 미국은 물론 중국시장에서도 이미 충분한 성과가 나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러브 유어세프 전 티어’는 중국 최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넷이즈(163.com)에서 판매량 25만장, 일본 오리콘 인증 판매량 19만장, 미국 닐슨 인증 판매량 13만2,000장을 기록했다. 이를 모두 합하면 250만장에 육박한다.
BTS 중심 엑소·워너원 등 힘입어 국내 음반 역주행
지난해 판매량 1,448만장…6년새 285% 폭풍 성장
“듣는것 아닌 소장품”…화보집 수준 책자 팬심 자극
한국의 음반시장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음반시장인 미국시장에 못지않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는 2017년 한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영미권 앨범으로 610만장을 기록한 에드 시런의 ‘나누기(÷,Devide)’를 꼽았다. 2위 테일러 스위프트가 450만장, 3위 핑크가 180만장이다. 방탄소년단의 기록은 미국시장에서도 3위권 내를 차지할 수 있는 셈이다. 세계적으로 음반시장이 쪼그라드는 상황에서 ‘홀로’ 역주행이다. 미국음반산업협회(RIAA)의 보고서 ‘미국 세일즈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2002년 총 8억3,300만장 판매된 CD 음반은 2017년 8,760만장으로 90% 넘게 감소했다. 대신 스트리밍 등 디지털 음원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2011년의 2억4,000만장과 비교해도 그 감소세가 극적으로 드러난다. 타 국가들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최태영 한국음악콘텐츠협회 연구원은 “최근 한국의 음반판매량도 영미권 인기 가수들에 비해 크게 밀리지 않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음반 시장의 예상 밖 부활의 배경에는 ‘굿즈’로서의 음반 가치가 크게 높아졌다는 점이 꼽힌다. 플라스틱 CD 케이스에 CD가 담겨있고, 표지 겸 가사집이 있던 기존 앨범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화보집 수준의 책자에 CD가 꽂혀 있는 구조다. 멤버들의 사진이 담긴 포토카드, 팬사인회 응모 티켓은 덤이다. 이를 통해 음반은 단순히 음악을 듣는 장치에서 하나의 ‘소장품’으로 거듭났다. 아울러 같은 CD이지만, 화보집의 내용을 다르게 해 팬들의 수집욕을 더욱 자극한다. 방탄소년단의 ‘러브 유어셀프 결 앤서’의 경우 ‘S’ ‘E’ ‘L’ ‘F’ 등 총 4개 버전으로 출시됐다. 게다가 CD마다 한 장씩 들어있는 포토카드는 총 28종 중 1종을 랜덤으로 증정한다. 인기 아이돌 팬이라고 밝힌 허진선(25)씨는 “아이돌 가수의 포토북을 모으기 위해 앨범을 여덟장씩 샀고, 한정판 포토카드를 구하기 위해 콘서트장에서 팬들끼리 교환까지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스트리밍이 음악시장의 주류로 넘어간 상황에서 앨범이 팔린다는 것은, 앨범이라는 유형적 가치 자체가 인정받은 것”이라며 “최근 방탄소년단과 같은 아이돌이 세계 문화시장의 본류(本流)와도 같은 미국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며 앨범을 평소에 사지 않던 이들에게도 ‘한번 사 볼까?’라는 생각이 들게했다”고 짚었다. 이 교수는 이어 “비틀즈의 LP 앨범이 더이상 음악을 듣는 수단이 아님에도 팔렸던 것과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음악평론가 미묘 역시 “100만장이라는 수치는 한국 시장에서 상징적인 숫자”라며 “아이돌이 산업적인 측면에서 한 단계 더 도약했다는 한 이정표”라고 분석했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