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이상민 국장을 비롯한 남측 준비팀과 북측 준비팀이 지난 6월 개성공단 내 종합지원센터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설 개보수 공사 착수를 위한 협의를 하고 있다./서울경제DB[통일부 제공]
개성공단에 설치될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목표로 했던 8월을 결국 넘겨버렸다.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둘러싼 북미 간 협상이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면서 남북관계 진전에도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분위기다.
31일 통일부에 따르면 연락사무소 건물로 쓰일 개성공단 내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 개보수 공사는 모두 마무리됐고 구성·운영에 대한 합의서도 타결돼 언제든 개소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개소식 날짜는 잡히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지난 6월 1일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연락사무소를 ‘가까운 시일 안에’ 개소하기로 합의한 뒤 ‘8월 개소’를 공공연하게 추진해왔고 이달 중순까지만 해도 이는 기정사실로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축사에서 공동연락사무소를 언급하며 “며칠 후면 남북이 24시간 365일 소통하는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이달 말 방북이 연기되면서 기류가 달라졌다. 당초 비핵화 협상과는 별개로 연락사무소 개소를 추진한다는 분위기였던 정부는 지금은 “새로운 상황이 발생했으니 그에 맞춰 다시 한 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지난 27일 발언)며 신중한 태도로 돌아섰다. 이는 ‘비핵화에 진전이 없는데 남북관계만 앞서 간다’는 미국 측의 우려를 고려한 입장 변화로 풀이된다.
미국의 이런 우려는 남북이 공동으로 경의선 철도의 북측 구간을 조사하려던 계획이 유엔군사령부에 막혀 무산된 데서도 확인됐다. 남북은 지난 22일 서울에서 출발한 남측 열차를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개성을 거쳐 신의주까지 운행하고 27일 귀환하는 방식으로 북측 철도에 대한 공동조사를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비무장지대(DMZ)를 관리하는 유엔사가 방북과 관련한 세부사항을 요구하며 MDL 통행계획을 승인하지 않았다.
유엔사는 남측이 열차 연료로 쓰기 위한 경유를 싣고 방북하는 데 대해 대북제재에 해당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사가 방북 세부사항 등을 요구하며 제동을 건 것은 지극히 이례적으로, 북한 비핵화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남북이 경제협력에 속도를 내는 데 대한 미국 측 불만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유엔군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이 겸해 이런 결정에는 미국 정부의 의지가 반영됐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연락사무소 설치와 남북 철도 연결 및 북한 철도 현대화는 4·27 판문점선언에 담긴 핵심 합의사항인데,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난항을 겪는 데 따른 미국의 견제로 이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정부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선순환’ 구도에 따라 당장은 남북관계가 다소 앞서가더라도 이는 북미관계와 북한 비핵화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 미국을 설득해온 것으로 전해졌지만, 한계가 있어 보인다. ‘비핵화 협상’과 ‘판문점 선언 이행’이 연동된 양상으로, 비핵화 협상에 숨통이 트여야 판문점선언 이행에도 다시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연락사무소 개소와 북한 철도 현대화 등의 사업은 연기된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토대로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 진전이 이뤄진 뒤에야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홍승희인턴기자 shhs9501@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