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모르게 자기들끼리만 짜고 하는 약속이나 수작.’ 국어사전에 ‘짬짜미’를 치면 나오는 설명이다. 짬짜미의 법적 용어는 ‘담합’이다. 설명에 나오듯 담합은 어떠한 형태로든 사람들 간의 ‘짜고 하는 약속과 행위’를 동반한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이 같은 전통적인 담합 개념이 깨지고 있다.
가격 알고리즘이 자동적으로 상품 가격을 결정하고 나아가 인공지능(AI)이 이를 주도한다. 온라인 상거래 플랫폼은 이미 수년 전부터 알고리즘을 이용한 자동 가격결정 소프트웨어를 채택하고 있다. IBM의 가격최적화 소프트웨어(DemandTec Price Optimization software)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면 가격을 최적화하면서 효율성을 높이고 소비자의 데이터를 모아 최적의 전략을 짤 수 있다고 IBM은 선전한다.
기업들이 이 같은 소프트웨어로 가격을 책정할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질까. 과점 상태를 보이는 시장에서 기업들 간 정보교환이나 교류가 전혀 없었음에도 각 기업이 가격 알고리즘을 활용해 담합과 유사한 가격 인상 흐름을 보일 경우 이를 담합으로 적발할 수 있을까. 이 알고리즘을 만든 사람이나 기업 혹은 구매한 기업을 처벌할 수 있을까. 현재의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이 경우 담합으로 판정할 수 없다. ‘합의(담합)의 과정’으로 볼 수 있는 ‘사람 사이의 접촉이나 상호 의사전달’이 없기 때문이다.
이문지 배재대 법대 교수는 “빅데이터의 수집 및 가공에 기초한 사업 모델 부상으로 경쟁제한과 시장지배력 남용 그리고 프라이버시 침해 등의 폐해를 초래할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되므로 경쟁법 집행을 포함해 이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그러나 빅데이터 활용으로 사업자들은 광범위한 기술혁신을 이루고 많은 경우 무료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으며 그로 인해 소비자들 역시 엄청난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도 중시해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조성익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알고리즘 담합의 경우 현 경쟁법 체제에서 처벌은 어렵다”면서도 “서구에서도 아직 사람이 개입하지 않은 알고리즘, AI만의 담합 사례는 없는 만큼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알고리즘 담합, AI 담합의 구체적인 경제적 폐해가 드러날 때 규제 논의도 가능할 것”이라며 “섣부른 제재가 오히려 부작용을 부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안의식기자 온종훈선임기자 miracl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