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르포] 베를린 점령한 中 제조업 굴기…국내 중기 22개 VS 중국 200개

[IFA 글로벌 마켓 가보니]
국내 판매가 10분의 1 수준에 유럽 바이어 공략

3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가전박람회(IFA) 2018의 글로벌마켓 전시관에서 중국 업체들이 바이어와 상담하고 있다./베를린=박호현기자

“에어팟(애플 아이폰 무선 이어폰)의 10분의 1 가격입니다. 최소 주문 수량 100개로 주문만 하면 바로 생산합니다”

3일(현지시간) 독일 국제가전박람회(IFA) 2018 글로벌마켓 전시장에서 만난 중국의 한 중소기업은 에어팟 ‘짝퉁’을 단돈 20달러에 납품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에플이 생산하는 정품 무선 에어팟은 200달러가 넘는다. 짝퉁 에어팟 음질은 정품보다 떨어지는 수준이었지만 가격은 웬만한 유선 이어폰 수준으로 실제 바이어 문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독일 가전박람회에서도 중국 제조업이 한국을 압도하고 있었다. 특히 일반 전시장 위주인 IFA가 아닌 실제 판매자와 구매자 간 협의를 진행하는 IFA 글로벌마켓(Global market)은 사실상 중국 도시에서 열리는 박람회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IFA 글로벌마켓은 행사장 또한 IFA 본 컨벤션 센터와 자동차로 10분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어 일반 관람객보다 실제 바이어들의 방문이 많았다.


3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가전박람회(IFA) 2018의 글로벌마켓 전시관의 중국 기업들의 전시장은 200개 이상으로 한국 기업(22개)의 10배에 달했다. /베를린=박호현기자

중국의 물량 공세는 전시장 숫자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IFA 글로벌마켓 내 중국 전시장은 200개 이상이었다. 반면 한국 기업은 22개로 중국의 10분의 1 수준이다. 특히 대부분 단독으로 온 중국 중소기업과 달리 한국은 한국전자산업진흥회, 경남테크노파크와 같은 공공기관의 주도로 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국내 중소기업 중 단독으로 참가한 기업은 더하기(모바일 액세서리), 훠링(차량용핸드폰 거치대), 스마트카라(음식물 처리기) 등 4개 업체뿐이었다.

전시장 대부분을 장악한 중국 기업들은 인터폰, 디스플레이, 센서, 스피커, 드론, 공기청정기 등 안파는 가전제품이 없을 정도였다. 거래 조건도 바이어 입장에서 매력적이었다. 선전에 위치한 한 스피커 제조사는 물에 뜰 수 있고 방수 기능이 있는 스피커 가격을 단돈 10달러에 맞춰 줄 수 있다고 바이어를 설득했다. 최소주문수량은 1,000개로 주문만 하면 바로 생산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직접 3층 규모 공장 사진을 보여주며 설득하는 모습도 보였다. 국내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에 뜨는 블루투스 스피커가 9만~15만원에 팔리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가격이다.

근처에는 와이파이 기능이 있는 스마트 콘센트 제조사도 있었다. 비슷하게 개당 10달러 수준으로 최소 주문 수량도 500개 안팎이었다. 이밖에 아마존 알렉사와 연동되는 인공지능 가전기기까지 거의 모든 가전제품을 국내 소매 가격보다 50% 이상 저렴한 가격으로 바이어들과 협상하고 있었다.

3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가전박람회(IFA) 2018의 글로벌마켓 전시관의 중국 업체들/베를린=박호현기자

대부분 제품들 기능은 국내 대형 가전사의 제품보다 떨어졌다. 하지만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산업처럼 이들 중국 기업이 국내 가전 기술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였다. 같은 제품을 전시하는 중국 중소기업만 십수개로 이미 자국 기업 간 경쟁이 독일 박람회에서까지 치열하게 펼쳐졌기 때문이다. IFA 전시장에서 만난 중소기업 대표는 “박람회에 참가한 중국 기업 중 제2의 ‘DJI(중국의 세계 최대 드론 생산기업)’가 탄생할 수 있다”며 “이들 기업 중에서는 기술력과 생산능력이 떨어지는 곳이 많지만, 근본적으로 수많은 기업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우수한 기업이 나올 수 있는 구조”라고 밝혔다. /베를린=박호현 기자 green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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