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무릎호소 1년' 상징성이 그리 중요했나

사회부 진동영 기자


“특수학교가 기피시설은 아니지 않습니까. ‘대가성 합의’로 장애가족의 자존심이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서울시교육청과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강서 특수학교 설립반대 비상대책위원회가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서진학교) 설립 합의를 이룬 소식이 전해졌지만 장애학생 부모들은 기쁨보다 분통을 터뜨렸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등 장애학생 학부모 단체들은 5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합의를 철회하고 조희연 교육감은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조 교육감은 전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 의원, 비대위 대표와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으며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를 즐겼다. 서울시교육청은 하루 뒤 대대적인 특수교육 혁신방안도 발표했다. 여기에 지난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장애학생 부모의 ‘무릎 호소’ 후 꼭 1년 만이라는 상징성까지 더했다.


하지만 날짜까지 맞춰 ‘아름다운 합의’를 연출하려 한 탓에 장애학생 부모들에게 오히려 상처를 주고 말았다. 조속한 합의를 위해 장애학생 부모들을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했다는 의심도 나온다.

조 교육감은 특수학교 설립의 반대 세력을 설득했다는 데 만족한 듯했지만 방향을 잘못 잡았다. 조 교육감은 지역 주민들과 지역구 국회의원인 김 의원을 설득하기 위해 근거도 없는 ‘국립한방병원 설립에 협의한다’는 반대급부를 내놨다. 애초에 학교용지에 특수학교를 설립하는 데 아무런 법적 하자가 없는데도 주민들에게 혜택을 주면서 ‘결재’를 받아왔다. 교육청 관계자는 “장애학생들의 입장을 잘 전달했기 때문에 반발이 없을 줄 알았다”고 말했지만 정작 장애학생 부모들은 “합의 과정에 대해 전혀 의견을 묻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교육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조 교육감의 전시행정 때문에 벌어진 ‘사고’라고 지적한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서울교육감 사상 최초로 재선에 성공하면서 조 교육감은 교육행정가가 아닌 정치인으로 변신해버렸다”며 “향후 정치적 행보를 위해 이번 임기 동안 ‘성과 쌓기’를 하려는 것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조 교육감이 그간 전임 교육감들에 비해 특수교육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치인 조희연’이 아닌 묵묵히 결실을 위해 노력하는 ‘교육행정가 조희연’을 바랄 뿐이다. 우리가 정치인과 교육감을 별도로 뽑는 이유를 곱씹어봐야 한다.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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