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 세법’
최근 세제 관련 이슈를 보다 보면 이 같은 생각이 듭니다. 많은 국민에게 연관돼 있는 세법이 이랬다저랬다, 이 사람 말 다르고 저 사람 얘기가 틀린 것이죠. 이를 바라보는 국민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인 게 지난해 법인세와 소득세입니다. 당초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소득세와 법인세율을 올리지 않겠다고 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인상안을 들고 나왔습니다. 지난해 7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청와대에서 열린 ‘2017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소득 200억원 초과에서 2,000억원 미만까지는 현행 법인세 22%를 유지하되 2,000억원 초과 초대기업에 대해서는 과표를 신설해 25%로 적용하자”고 밝혔습니다. 이어 “소득 재분배를 위한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 강화 방안으로 현행 40%로 되어있는 5억원 초과 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을 42%로 늘려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안은 그대로 추진됐습니다. 세제를 담당하는 기재부만 곤란하게 됐습니다. 김 부총리는 이후 수차례 유감을 표시해야 했죠.
계속되는 종부세 세제개편에 국민들은 어떤 게 최종안이 될지조차 모른다. 여의도 아파트 전경. /송은석기자
시도 때도 없이 뒤집히는 세법
올 들어 이런 움직임은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종합부동산세를 볼까요. 지난 6월 재정개혁특별위원회는 종부세 인상과 관련해 4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습니다. 당시 안을 보면 △1안은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단계적으로 80%에서 100%로 인상 △2안은 세율을 최대 0.5%포인트(p) 인상 △3안은 공정가액비율 2·5·10%p 단계적 상향+세율 인상 △4안은 1주택자는 공정가액 비율만 상향, 다주택자는 세율도 인상 등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언론에서는 종부세 인상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었는데 재정특위는 7월3일 최종권고안을 내놨습니다. 특위 권고안은 공정가액비율은 5%p씩 100%까지 올리되 과세표준 6억원 초과 세율을 0.05~0.5%p 올리는 게 뼈대였습니다. 34만9,000명이 1조881억원을 더 내는 구조였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을 2,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낮추라고 했습니다. 연간 금융소득이 2,000만원이 넘으면 다른 소득과 더해 종합소득세율로 누진과세 하는데 그 기준을 내리라는 것입니다. 이 경우 상당 수 인원은 세부담이 늘어납니다. 여기에 임대사업자 세혜택도 줄이라고 했죠.
정부는 바로 다음날 금융소득종합과세와 임대사업자 안은 그대로 받을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실제 정부가 7월6일 내놓은 최종안은 재정특위 안과 달랐습니다. 공정가액비율은 연간 5%p씩 90%까지, 세율은 0.1~0.5%p 인상이었습니다. 또 특위에는 검토로만 돼 있던 3주택 이상자에 대한 중과세(0.3%p 추가)도 들어갔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금융소득종합과세입니다. 정부안에서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 인하안은 빠졌습니다.
뭐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종부세는 결국 3번째 최종안이 나왔고, 금융소득은 번복됐지만 정부가 1년에 한번씩 청와대와 여당의 생각을 종합해 내는 세법개정안이기 때문입니다. 다들 많이 믿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청와대는 재정특위는 어디까지나 자문기구라는 입장을 견지해오기도 했지요.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서울경제DB
떠보기인가 속이기인가…세법 안정성은 뒷전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여당서 종부세 인상안을 다시 들고 나온 겁니다. 지난달 30일 이해찬 민주당 당대표는 “종부세 강화를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포문을 열었습니다. 지난 3일에도 “정부에 3주택 이상 초고가 주택에 종부세 강화를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종부세가 또다시 뒤집히는 셈입니다.
이뿐인가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말 “주택임대등록 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이 과하다. 혜택을 줄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임대사업 활성화라는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9개월 만에 뒤집는 발언이었습니다. 임대사업자 관련 특위안을 정부가 손봤는데 이를 다시 흔드는 얘기입니다. 국토부는 뒤늦게 “다주택자의 기존보유 임대주택을 얘기한 게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이미 시장혼란은 커진 상태였습니다.
종부세만 해도 사실상 국회에서 뒤바뀔 예정입니다. 김동연 부총리는 최근 “국회에서 논의하겠다”고 공식화했는데요, 이론상 국회에서 바뀔 수 있다고 하지만 해도 너무한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은 국민 떠보기라고 입을 모읍니다. 대충 먼저 안을 한 번 선보이고 시장반응에 따라 추가안을 내놓는다는 것이지요. 참여정부 때 종부세로 크게 데였던 만큼 안을 던져보고 “괜찮겠다” 싶으면 계속 강화하는 것이죠. 지지율을 걱정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는 국민을 속이는 일입니다. 한번 하기로 했으면 이를 집행해보고, 문제가 있으면 보완하는 게 맞는데 수시로 말바꾸기를 하기 때문이지요. 세제는 안정적이어야 합니다. 기재부 발표조차 최종안이라고 못 믿어서야 어떻게 국민들이 정부를 믿겠습니까? 하반기 재정특위 활동도 시작했습니다. 지금 구조로는 특위는 무용지물이고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조차 헷갈립니다. 공시가격 인상은 인상대로 추진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국민은 실험대상이 아닙니다. 떠보기식 세법개정, 이제는 그만둬야 합니다. 국민은 바보가 아닙니다.
/세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