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왼쪽 세번째) 국무총리가 9일 오후2시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관계부처 장관회의를 열고 굳은 표정으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 확산 방지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이 총리는 회의에서 “2015년의 실패를 기억하겠다”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선제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권욱기자
3년 만에 국내에서 발생한 메르스의 지역사회 확산 여부는 2주 안에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메르스의 잠복기는 2~14일이다.
지난 2015년 메르스 유행 당시에도 2주 내 확산세를 꺾지 못하면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져나갔다. 당시 국내 첫 메르스 환자는 바레인에서 귀국한 지 16일 만에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방치됐던 그는 4개 병원을 거치며 수많은 사람을 감염시켰다.
이번 사태도 자칫 당시와 유사하게 전개될 뻔했다. 중동 지역을 방문했던 국내 건설사 관계자 A씨가 설사 증세 등을 호소했지만 인천국제공항의 검역담당자들은 체온이 정상이라는 이유로 무사 통과시켰다. 만약 A씨가 이후 버스나 전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했거나 인구밀집지역을 방문했다면 2차 감염 대란이 일어날 뻔했다. 다행히 A씨는 자신의 증세를 이상하게 여겨 검역대 통과 이후 공항에서 곧장 삼성서울병원으로 향했고 이 과정에서도 리무진택시를 이용해 시민들과의 집단접촉 위험성을 크게 낮췄다. 질병관리본부는 A씨가 입국 당시 휠체어에 탑승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도 격리 없이 공항을 그대로 빠져나가게 둔 것과 관련, 체온이 정상인데다 발열이나 기침과 같은 호흡기 증상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박기준 질병관리본부 검역지원과장은 “휠체어를 타고 들어왔기 때문에 더 신중하게 살폈으나 환자 본인이 열흘 전 설사 이후 현재는 아무 증상이 없다고 답했다”며 “현재 설사가 없는 상황이라고 답해 함부로 메르스로 의심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보건 당국은 A씨가 확진 판정을 받은 뒤에야 부랴부랴 긴급대응에 나섰다. 질병관리본부는 9일 메르스 위기 경보 수준을 ‘관심’에서 ‘주의’로 격상했다. 밀접접촉자 22명에 대한 격리도 실시됐다.
밀접접촉자는 환자와 2m 이내 긴밀하게 접촉하거나 같은 공간에서 생활한 사람 또는 환자의 분비물이 접촉된 사람 등을 말한다. 이날 22명으로 늘어난 밀접접촉자 중 발열이나 기침 등 메르스 관련 호흡기 증상을 보이는 경우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밀접접촉자는 자택 격리 중이며 출국도 제한된다. 이들과 별도의 의심환자도 추가로 보고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를 거쳐 최근 한국에 입국한 영국 국적의 24세 여성이 9일 메르스 의심 증상을 보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격리치료를 받고 있다. 감염 여부는 이르면 10일 오전 중에 확인될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의 경우 쿠웨이트에서는 A씨가 현지 체류 당시 함께 직원 숙소에 머물던 이들 중 두 명이 기침·감기 등 메르스와 유사한 증상을 보여 현지 의료기관에서 격리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메르스 감염 여부에 대한 검사결과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질병관리본부는 접촉자가 환자와 접촉한 후 메르스의 최대 잠복기인 14일간 발열 및 호흡기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지를 모니터링할 예정이다. 아울러 CCTV 등을 통해 확진 환자 입국 이후 이동경로 및 접촉자 조사도 진행 중이며 중동에서 들어오는 모든 비행기에 대해 검역을 실시하고 있다.
전병율 차의과학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3년여 만에 다시 발병한 메르스에 대해 “앞으로 2주 안에 결판날 것”이라고 강조하며 “밀접접촉자에 대한 철저한 격리와 함께 의심 증상 발현 여부를 관찰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2018년 한 해에만 중동에서 116명이 메르스에 감염됐고 30명이 사망했던 만큼 보건 당국은 절대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와 정치권도 초비상이 걸렸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메르스 대응 긴급관계부처 장관회의’를 열어 “초기대응을 잘하고 있다고 하지만 약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미리미리 대처해야 한다”며 “이번에야말로 우리가 메르스에 대한 불명예스러운 세계적 평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이날 오전 A씨가 격리치료를 받고 있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을 찾아 “밀접접촉자 20여명 외에도 추가로 더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날 쿠웨이트를 메르스 오염지역으로 지정했다. 쿠웨이트는 지금까지 보건당국이 지정한 메르스 오염지역이 아니었다. /임웅재·우영탁기자 jae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