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공정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김 위원장은 최근 직원들에게 “지 부위원장에게 보고할 때 정무적으로 판단하라”고 지시했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발언은 ‘알아서 하라’는 뉘앙스였지만 받아들이는 직원들 입장에서는 보고를 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됐다”고 말했다.
공정위 내 2인자인 지 부위원장은 지난 2015년 공정위 상임위원을 끝으로 공직을 떠나면서 중소기업중앙회 상임감사로 자리를 옮겼다. 검찰은 지 부위원장이 중기중앙회로 자리를 옮길 당시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 심사를 거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공직자윤리법은 4급 이상의 공직자가 퇴직 전 5년간 소속됐던 기관이나 부서의 업무와 연관이 있는 곳에는 퇴직 후 3년간 취업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지철호 패싱’은 검찰 조사에 대한 대응 차이에서 비롯됐다. 지 부위원장은 중기중앙회로 자리를 옮길 때 법적 근거를 충분히 따져본데다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 반면 김 위원장은 불구속 기소만으로도 업무에서 배제돼야 한다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압수수색 대응·자진사퇴 놓고 갈등 격화
“사상 초유...어떤 결론 나오든 조직엔 큰 상처”>
김상조 위원장
지철호 부위원장
김 위원장과 지 부위원장은 공정거래법상 전속고발권 폐지 문제를 놓고 검찰과 각을 세우는 과정에서부터 갈등을 빚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가 전속고발권을 내려놓는 과정에서 검찰이 공정위를 압수수색을 하는 등 공정위와 기 싸움을 벌일 때 정통 관료 출신인 지 부위원장은 앞장서 총대를 멨다. 반면 김 위원장은 지 부위원장과 달리 ‘검찰에 최대한 협조하자’는 스탠스였다고 한다. 지 부위원장은 사실상 ‘시범 케이스’로 걸려든 것일 뿐인데 자진 사퇴하게 되면 검찰에 끌려다닐 수 있다며 원칙론을 내세웠고 김 위원장은 그런 지 부위원장을 부담스러워 해 갈등이 격화됐다.
사상 초유로 공정위원장과 부위원장의 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난 이번 사태는 어떤 식으로 매듭지어져도 조직에 큰 상처를 입힐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지 부위원장을 업무에서 배제한 것을 두고 김 위원장이 월권을 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차관급인 공정위 부위원장 임명권은 청와대에 있다. 공정위 전원회의의 당연직 위원이기도 하다. 한 공정위 전직 관료는 “공정거래법 40조를 보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거나 장기간 심신미약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위원의 신분을 보장하게 돼 있다”면서 “위원장이라 하더라도 전원회의의 당연직 위원인 부위원장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등한 전원회의 멤버인 위원장이 부위원장을 배제시킬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1심 선고도 나오지 않은 검찰 불구속 기소만으로 위원장이 부위원장을 공식·비공식 업무에서 배제시키고 옷을 벗게 하는 것은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임기가 보장된 부위원장을 밀어내는 것은 조직에 상처가 될 수 있다”며 “대외적인 업무야 자제할 수 있지만 내부 업무까지 직원들에게 보고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을 두고 과도한 것 아니냐는 기류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세종=한재영·강광우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