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웅 쏘카 대표가 12일 서울 성동구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송은석기자
“한국의 첨단 모빌리티(이동수단) 시장은 ‘갈라파고스(남아메리카의 제도)’만도 못합니다. 갈라파고스에는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는 등 자체 생태계라도 있지만 한국은 그런 것조차 없거든요. 이대로 가다가는 국내 시장과 기업이 해외 대형 플랫폼에 다 먹힐 겁니다.”
이재웅 쏘카 대표 겸 기획재정부 혁신성장본부 공동본부장은 12일 서울 성동구 사무실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움직이다가는 해외는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모빌리티 기업이 생존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 대표는 지난 6월 말 본지와 만나 10년 만에 국내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뒤 모빌리티 시장의 ‘키맨(keyman)’으로 떠올랐으며 이번에 공식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대표의 토로는 미국의 우버와 중국의 디디추싱, 싱가포르의 그랩, 인도의 올라캡스 등 지역별 1위 모빌리티 사업자에 거액을 투자해 ‘글로벌 연합군’을 구축한 손정의 회장의 일본 소프트뱅크 행보를 언급하다가 나왔다. 우버가 중국과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철수한 뒤 북미·남미와 유럽 시장에 집중하고 현지 기업인 디디추싱과 그랩이 각각 주요 사업자로 활동하게 한 것도 사실상 소프트뱅크의 결정이다. 특히 소프트뱅크는 한때 한국 유력 모빌리티 기업에 1조원 규모의 투자도 검토했으나 카풀(승차공유) 제한 등 국내 모빌리티 시장에서의 규제 문제와 우버의 철수 사례를 보고 계획을 유보한 상태다.
이재웅 쏘카 대표가 12일 서울 성동구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송은석기자
포털 ‘다음’을 1995년 창업해 ‘야후’나 ‘구글’ 등 외국계 인터넷 기업과 직접 경쟁해 승리한 경험이 있는 이 대표도 “모빌리티 시장에서의 경쟁은 2000년대 초반보다 훨씬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당시에는 포털 등 플랫폼의 현지화가 중요했는데 지금은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애플리케이션을 내놓으면 전 세계인이 다양한 언어로 쓸 수 있기 때문에 내수 시장을 ‘지킨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시대”라면서 고개를 저었다.
국내 모빌리티 업계에서는 크게 두 개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나는 이 대표가 이끄는 쏘카와 카카오(035720)의 교통 서비스 전문 자회사 카카오모빌리티다. 쏘카는 1만1,000대의 차량과 39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했고 택시·대리운전 호출 서비스 ‘카카오T’를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는 2,300만명의 사용자를 모집했다. 하지만 일 평균 3,500만명이 사용하는 소프트뱅크의 모빌리티 연합군(우버·디디추싱·그랩·올라캡스 등)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카카오모빌리티의 유료 호출 서비스나 풀러스의 카풀 기능 확대 등 새로운 사업 시도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좌절되면서 국내 모빌리티 시장의 성장판은 꽉 막힌 상태다. 반면 해외에서는 우버나 디디추싱 등 대형 플랫폼이 각종 모빌리티 서비스를 한데 모아 제공하면서 사용자의 편의성을 높이고 규모의 경제를 갖췄다. 이 대표는 “국내 스타트업에 해외로 나가라고 이야기하는데 디디추싱처럼 내수 시장에서만 5억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해서 나오는 공룡과 어떻게 싸울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렇다면 글로벌 플랫폼에 국내 기업이 합류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을까. 이 대표는 이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국내 플랫폼이 해외 기업에 인수합병(M&A)되는 것은 시장의 부가가치를 한번에 넘겨주는 셈인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춘 뒤 국내 시장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한 다음 글로벌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우버나 각종 해외 플랫폼이 국내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짚었다. 그는 “우버가 미국·유럽·일본 등 전 세계에서 자율주행차를 실험 중인데 이것이 상용화되면 한국만 못 들어오게 막을 수 있겠느냐”며 “그때 가서는 갈라파고스에 갇혀 있던 국내 기업이 아예 경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경제구조·산업 변화를 정부와 기업·이해관계자에 직접 설명하고 설득하고자 이 대표는 지난달 기재부의 혁신성장 공동본부장 자격으로 정책협의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다음을 떠난 뒤 10년 만에 쏘카 대표로 기업 전면에 등장한 그는 경영 일선에서도 자율주행 스타트업(라이드플럭스)에 투자하고 데이터 플랫폼 기업(VCNC)을 인수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혁신성장 공동본부장이 된 지 42일이 지난 그에게 공직을 맡은 소감을 물었다. 이 대표는 “정부의 혁신 의지를 확인한 만큼 즐겁게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는 답변으로 갈음했다. 정부에서 제대로 몰랐던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 의미를 둔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개별적으로 고위공무원이나 택시 업계 관계자와의 접촉도 늘리고 있다. 단순히 규제를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빌리티를 비롯해 공유경제의 시스템과 관습을 새로 만들고 뿌리내리기 위해서다. 이 대표는 “자율주행이나 차량 내 개인화 서비스는 이르면 10년 내 상용화될 예정인데 지금부터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대비하지 않으면 더 많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면서 “이러한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지민구기자 mingu@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