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시 전형에서 자기소개서를 제출하는 경우가 있다. 지원자 스스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서술하는 형식의 글이다. 사실 전부터 대필 우려가 제기됐다. 학생이 스스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지 않고 부모나 담임이 대신 작성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제출된 자기소개서만으로는 누가 작성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 또 다른 우려가 사실로 밝혀졌다. 대학 입시에서 자기소개서를 표절했다가 해마다 1,000명 이상이 불합격 처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대학교육협의에서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8학년도 전형에서 1,406명이 표절 문제로 애초의 합격이 번복됐다.
표절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처음이 아니라 과거에 이미 흔하게 거론된 사안이다. 대학에서는 대학생이 과제를 작성하면서 남의 글을 자신의 생각인 양 표절하는 일이 있고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는 후보자가 학술지나 학위논문을 표절해 낙마하는 사례가 있었다. 이제는 그 대상이 성인에서 청소년으로 확대되고 있다. 어른이 표절하니 청소년도 표절을 따라 하는 형국이 된 셈이다.
자기소개서를 표절하는 사람은 흔히 이 세상의 수많은 글 중에서 나와 비슷한 것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다. 좋은 표현과 문장을 이곳저곳에서 가져와 짜깁기하면 결국 발각될 수 없으리라 스스로 확신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완전 범죄를 꿈꾸는 심리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개개인의 자기소개서를 이미 구축된 ‘유사도 검색 시스템’에 넣어 돌리게 되면 단어와 문장이 얼마나 다른 글과 일치하는지 그 비율이 자동으로 검출된다. 이러한 유사도 수치를 바탕으로 전화 조사나 심층 면접을 하면 표절 여부가 확실하게 가려지게 된다.
과거 자기소개서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의혹이 있었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설마 자기소개서마저 표절할까 하는 신뢰가 남아 있었다. 즉 ‘대학(大學)’에서는 말하는 대로 자신을 스스로 속이지 않으리라는 ‘무자기(毋自欺)’가 전제돼 있었다. 스스로 속이게 되면 결국 언젠가 타인을 속이게 된다. 나아가 사람이 자신을 믿지 못하면 으레 다른 사람도 자신과 똑같이 스스로 속인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자기 자신도 믿지 못하고 자신과 늘 교제하는 사람도 믿지 못하는 불신의 늪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불신의 늪에 빠지게 되면 무슨 일을 하더라도 검증은 꼭 거쳐야 하는 필수 과정이 되고 또 그 검증을 믿지 못해 검증을 검증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러한 검증과 검증의 검증은 개인과 사회에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는 비용으로 돌아오게 된다.
자기소개서 표절과 이로 인한 불합격 조치는 더 이상 적어도 자신을 속이는 자기(自欺)의 일은 하지 않으리라는 상호 신뢰를 저버린 결과다. 이제 막연히 스스로 속이지 않으리라 신뢰하지 않고 유사도 검색 시스템을 신뢰하게 됐다. 이 시스템의 검증을 거치지 않으면 어떠한 합격자도 의혹의 눈초리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무자기가 아니라 유사도 검색 시스템에 따라 검증된 합격만이 정당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표절의 만연은 유사도 검색 시스템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표절은 내가 내 힘으로 나의 미래를 준비하고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의 성과를 훔쳐서라도 나의 미래를 좋게 만들려는 욕망을 그대로 드러낸다. 내가 보고 읽고 찾은 것이 슬그머니 내 것으로 둔갑한다. 내 것과 남의 것의 가장 기본적인 경계가 허물어지면 진실한 노력으로 내 것을 일구려는 사람이 피해를 보고 또 성공을 거둔 사람을 의혹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현상을 낳게 된다.
유사도 검색 시스템이 부당한 합격을 찾아 불합격으로 돌려놓을 수는 있지만 진실한 노력과 의혹의 눈초리를 제거할 수는 없다. 유사도 검색 시스템이 결코 만능일 수는 없다. 우리가 남의 것을 내 것으로 가로채려는 욕망을 정면으로 응시하려면 각자 스스로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엄중한 무자기의 검색 시스템을 통과해야 한다.